정부의 '주 4.5일 근무제' 도입 방침에 산업계 고심이 깊다. 주 4.5일제가 시행되면 법정 근로시간은 현행 주 40시간에서 36시간으로 줄어들게 된다. 산업 현장에선 전면 시행한 지 4년이 지난 주 52시간제(연장근로 최대 12시간 허용)도 사실상 안착하지 않은 마당에 주 4.5일제를 도입한다는 건 현실성이 낮다는 아우성이 나오고 있다. 공장을 24시간 돌리는 곳이 많은 지역의 섬유업계 또한 근무시간 단축을 의무화하면 산업 생태계가 흔들릴 것이란 우려가 크다.
◆생산성 저하·단가 상승 불가피
13일 오후 2시 30분 방문한 대구 달서구 성서산업단지의 한 섬유업체. 공장에선 니트 원단을 생산하는 기계 38대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근무 중이던 6명은 기계 작동 상태를 살피고 생산품을 옮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 회사는 생산 라인에 근무하는 16명을 8시간씩 3개조로 나눠 투입하면서 공장을 24시간 가동하고 있다. 이들의 근무시간은 1인당 주 48시간. 회사 대표 A씨는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24시간 가동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야간 근무를 없애고 공장 가동 시간을 줄이면 매출이 반토막 나고, 수익을 고려해 단가를 높이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해외시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회사에선 생산직을 포함해 모두 21명이 일하고 있다. A씨는 6년 전인 2019년 직원 수를 30명에서 현재 인원으로 조정했다. 주 52시간제 확대 적용에 따라 사람 손이 덜 가는 자동화 기기를 들이면서 인력을 줄였다. A씨는 주 4.5일제가 시행되더라도 직원들 근무체계를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A씨는 "제도는 제도일 뿐이고 우리는 우리대로 할 것"이라며 "주간에만 공장을 돌리면 생산성이 안 맞는다. 직원들 월급부터 은행 이자까지 다 감당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직원들도 돈을 벌어야 하니 일하고 싶어 한다. 만약 주 4.5일제를 적용하면 최저시급으로 계산했을 때 월급이 150만~160만원 수준인데 그걸로 먹고 살 수가 있겠느냐"고 했다.
◆"주 52시간제도 어렵다" 반발
산업계는 주 4.5일제를 도입할 경우 생산성 저하와 경쟁력 약화, 인건비 부담, 노사 갈등 요소 증가 등이 우려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인력 풀'이 없는 중소기업은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 규모와 업종에 따라 근무환경 격차가 벌어질 것이란 우려도 적잖다.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주 4.5일제 시행 시 인건비 부담은 늘고 수익성은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주중 직장인 위주로 손님이 급감하면서 전체 매출이 하락할 것이라는 게 외식업계 전망이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달 '주휴수당 폐지 없는 주 4.5일제 반대' 서명운동에 돌입하면서 "주휴수당, 근로기준법 확대 등의 부담을 안고 주 4.5일제를 도입한다면 직원 인건비를 시급으로 계산하는 소상공인·자영업 생태계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법정 근로시간 상한을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한 주 52시간제는 유사한 논란을 겪고 지난 2021년 7월 전면 시행됐다. 이 제도는 시행한 지 4년이 지나도록 사실상 산업 현장에 정착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로 주 52시간을 넘겨 일한 근로자가 초과분에 대한 임금을 받지 못하는 부작용도 이어졌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1~14일 여론조사기관 글로벌리서치를 통해 전국 직장인 1천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82명이 "주당 52시간을 넘겨 초과 근무를 했다"고 답했고, 이 중 절반 이상(55.7%)이 "일한 만큼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단체는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을 기본급에 포함하는 포괄 임금제로 인해 이 같은 사례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고용 축소하고 로봇 대체 속도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친노동 정책을 강화할 경우 노동시장이 둔화하면서 구직난이 심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인건비, 직원 관리에 대한 부담 등으로 인해 직원 채용을 꺼리는 사용자가 점차 늘어나고, 로봇이 빈자리를 대체하는 속도가 빨라질 것이란 관측이다.
실제로 기업들은 효율성 등을 이유로 로봇·인공지능(AI) 활용 범위를 넓히는 상황이다. 이노비즈협회가 지난 8~9월 전국 이노비즈기업(기술혁신형 중소기업) 540곳을 대상으로 AI 활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67.2%가 업무 현장에 AI를 도입해 활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AI 적용 분야는 ▷데이터 분석·시각화(64.8%) ▷문서 요약·교정(63.3%) ▷대화형 챗봇(46.1%) ▷제조공정 자동화(31.1%) 등으로, 단순 사무에서 제조 현장까지 확대되는 흐름을 보였다. 응답기업 60.7%는 "앞으로 AI 활용을 늘릴 의사가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산업계는 기업마다 상황에 맞는 고용정책을 운영할 수 있도록 노동제도를 유연화해 달라고 요구한다. 근로시간 단축을 현실화할 경우에는 업종과 규모에 따라 적용 시기 등을 차등화하고 인건비 지원, 세제 혜택 등 재정 보완책을 병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지역 섬유업계 관계자는 "노동시장을 유연화해야 근로자도 돈을 더 벌고, 기업도 튼튼해진다. 정부에서 근로시간이나 정년 같은 것을 하나하나 규제하려고 하지 말고 기업들에 맡겨두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댓글 많은 뉴스
대장동 일당 변호인조차 "항소 포기 상상도 못해…김만배 가장 이익"
"항소포기로 7천800억원 날아가"…국힘, 국정조사 촉구
[기고-김성열] 대구시장에 출마하려면 답하라
대법 "아파트 주차장 '도로' 아냐…음주운전해도 면허취소 못해"
미국에 기운 관세협상 무게추…한국이 얻어낸 건 '핵잠'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