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강성률의 줌인] 봉준호의 야심 찬 실험 '설국열차'

절망에서 희망으로…세계 167개국 개봉 글로벌 프로젝트

봉준호 감독의 거대 프로젝트 '설국열차'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설국열차'는 올여름 가장 큰 기대를 받고 있는 작품인데, 김용화 감독의 대작 '미스터 고'가 흥행에 참패하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은 '설국열차'에 온전히 쏠리고 있다. 이 영화는 '미스터 고'의 배나 되는 제작비가 투입되었고 그 규모도 말 그대로 글로벌적이다.

영화에 사용하는 언어부터 그렇다. 배우 송강호가 사용하는 몇 부분의 한국말을 제외하면 전부 영어로 진행된다. 배우들도 화려하다. 우리에게 '어벤져스' '퍼스트 어벤져스'로 알려진 크리스 에반스가 젊은 지도자 역을, '에이리언' '해리포터'로 알려진 존 허트가 꼬리 칸의 지도자 역을 맡았으며, 최근 '케빈에 대하여'로 호평을 받은 틸다 스윈튼이 총리 역을, '더 록' '트루먼 쇼'의 에드 해리스가 절대적 권위자 윌포드 역을 맡았다. 이렇게만 봐도 탄탄한 연기파 배우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영화가 글로벌 프로젝트인 것은 이뿐 아니다. 한국, 미국, 영국, 체코, 헝가리 등의 다국적 스탭 구성, 체코 바란도프 스튜디오(Barrandov Studio)에서의 촬영 등을 고려해도 그렇다. 그래서인가? '설국열차'의 해외 세일즈 기록은 놀랍다. 10분짜리 프로모 영상만으로 제작비의 절반인 2천만달러를 회수했으며, 프랑스, 일본, 동남아시아, 동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 167개국에서 와이드 릴리즈로 개봉한다. 이제껏 이런 한국영화는 단연코 없었다.

도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이렇게 호들갑을 떨 정도인가? 감독 봉준호는 영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원작만화를 처음 발견했을 때, 최초의 매혹은 '기차'라는 독특한 영화적 공간이었습니다. 뱀처럼 살아 움직이는 수십, 수백 개의 쇳덩어리들, 그리고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인간들의 모습이 제 마음을 뒤흔들었죠. 그런데 거기에서 더 나아가, 인간들은 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최후의 생존자들을 태운 노아의 방주에서조차, 인간들은 칸과 칸으로 계급이 나누어진 채, 서로 평등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참혹한 연쇄살인이건, 한강에 나타난 괴물이건, 홀로 미쳐가는 엄마이건, 늘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인간의 본성을 파헤치고 싶었던 저에게, '설국열차'라는 작품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봉준호의 영화는 항상 무언가를 찾는 사람이 등장한다. 개의 살해범이나 연쇄 살인범, 괴물에게 잡혀간 딸, 아들을 감옥에서 빼내줄 진짜 살인범을 찾아나섰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봉준호가 정작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언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찾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여러 모순과 직면하는 인물을 통해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직시하도록 만들었다. 봉준호의 영화는 장르 틀 속에서 작동하지만 이내 장르를 벗어나고 만다. 장르적 쾌감을 맛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불행으로 끝나는 우리 사회의 슬픈 현실에 주목한 것이다.

'설국열차'는 추상적인 희망을 찾아나선다. 기차라는, 필연적으로 앞으로 나가야만 하는 그 공간을 통해, 앞의 칸과 뒤의 칸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를 수밖에 없는 실체를 보며, 왜 그래야만 하는지, 왜 평등하게 함께 살 수 없는지 묻고 싶었던 것이다. 마침내 꼬리 칸에서 인간적인 취급을 받지 못하는 하층민이 반란을 일으켜 한 칸씩 앞으로 나아간다. 결국 인간이 함께 평등할 뿐 아니라, 기차라는 철저히 통제된 계급 사회를 벗어나, 과감히 그 틀을 깨고 새로운 희망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지 묻는데, 놀랍게도 봉준호는 이전의 영화와 달리, 그런 희망이 새로운 세대에게는 가능하다는 해피엔딩의 희망을 슬며시 영화 속에 그린다.

'설국열차'에는 봉준호의 세계관이 명확하게 녹아있다. 묵시록적 세계관을 특유의 검은 *미장센 속에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그것을 스스로 무너뜨려 역설적 희망을 재현한다. 아무리 봐도 '설국열차'는 봉준호의 영화이면서 기존의 봉준호 영화의 한계를 한 단계 넘어선다. 이 영화를 통해서야 비로소 절망에서 희망으로 돌아섰다. 봉준호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처럼 명확하다.

물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살인의 추억' 같은 다이내믹한 리듬이 약하고, '괴물' 같은 감정적 울림의 폭이 크지 않다. 다르게 말하면 작가적 입장의 완성도는 높은데, 대중성은 확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사이의 아슬아슬한 조율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이 영화의 흥행을 지켜보는 것이 올여름 가장 큰 관전 포인트 같다. 과연 관객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미장센=연극 용어로 직역하면, "무대에 배치한다"이다. 즉 무대에 인물이나 사물, 조명, 의상을 어떻게 배치하느냐는 물음에서 출발한 미학상 표현이다. 최근에는 영화 비평계에서 주로 사용하는데 단일 화면에서 담는 영상미를 가리킨다. 제한된 장면 내에서 대사가 아닌, 화면 구도, 인물이나 사물 배치, 조명 등을 용해 표현하는 연출자의 메시지와 미학을 말한다.

영화평론가'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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