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200만 명의 중독자

폭우가 쏟아지더니 인터넷이 끊겼다. 그러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릴없이 뒤척이는데, 며칠 전에 읽은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인터넷이 안 될 때 안절부절못하고 재미가 없는 것도 중독 증상의 한 가지'라는 바로 그 부분이. 인터넷과 온라인게임에 중독된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PC방에서 연간 2천700억∼4천800억원가량을 허비한다고 했다. 물론 게임중독으로 인한 손실 비용은 그보다 더 많아서 연간 8천억∼2조2천억원이나 된다고 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에 따르면, 초등학생 94.1%, 중학생 97.5%, 고등학생 99.1%가 게임을 하기 위해 인터넷을 이용했다. 성인은 37.2%였다. 청소년의 인터넷 이용이 학업, 정보수집, 건전한 대인 관계, 세계화 지식 습득과는 거의 무관하다는 놀라운 실태 자료였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청소년의 14.3%, 성인의 6.3%가 인터넷 중독 증상을 나타내고 있다고도 발표했다. 약 37만 명이 인터넷중독 고위험 사용자군, 약 163만 명이 잠재적 위험 사용자군으로 분류됐다. 무려 200만 명이나 되는 국민들이 인터넷중독에 빠져 있다는 무서운 통계였다.

그 탓에 인터넷중독 문제는 대한민국의 국가 수준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었다. '인터넷중독에 대한 병리학적 의학 용어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향후 정신장애 진단 매뉴얼이 개정되면 아시아, 특히 한국 청소년의 심각한 게임중독을 고려하여 인터넷중독이라는 용어가 포함될 것'이라는 외국 학자들의 진단도 그중의 한 사례이다.

인터넷중독, 무엇이 문제인가. 욕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대리만족할 수 있는 대체 수단을 찾는데 현대사회에서는 그것이 바로 온라인상의 게임이다. 그런데 게임이나 인터넷중독에 쉽게 빠지는 사람은 정서적 문제, 대인 관계의 실패, 낮은 자아 존중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이다.

지난 5월 23일 통계청은 '고민이 있을 때 우리나라 청소년의 22.0%는 어느 누구와도 상담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교사와는 1.3%, 아버지와는 3.2%만 상담했다. 어머니는 18.5%.

인간은 어릴 때 놀면서 지능, 창의성, 감성을 키운다. 자라면서는 창작 행위와 예술 감상, 여행, 글쓰기 등을 통해 인성을 함양한다. 하지만 암기 위주 입시교육에 몰린 우리의 청소년들은 인터넷에 빠져 시들어가고 있다. 새싹 같은 청소년들이 마음 문을 닫은 채 혼자 살아가고 있다니! 농부들은 단비를 기다린다. 그러나 나는 200만 명의 인터넷중독을 끊어낼 폭우 같은 정책을 기다린다.

정연지<대구미술광장 입주화가 gogoyonj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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