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산바'가 고령 지역을 덮친 지 벌써 1년이 다 돼 가지만 복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곳곳에 무너진 다리와 도로는 아직 보수를 채 마치지 못했다. 유난스러운 폭염이 숨을 죽이는 9월이면 태풍이 찾아올 텐데 무사히 넘어갈지 걱정이다.
우륵박물관에서 중화저수지를 지나 5분 정도 달리면 내곡미술촌이 나온다. 오래된 폐교가 예술가들의 작업 공간으로 변신한 장소이다. 잡초가 무성한 운동장 계단을 오르자 잔디밭에 소나무와 조각 작품들이 전시된 정원이 보였다. 닭들이 닭장 안에서 푸덕거리고 큼직한 개 3마리가 낯선 이를 보며 짖었다. 건물 주변에는 철제 조형물과 조각 작품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재능은 나누고 감성은 소통하고
내곡미술촌에는 윤명목(49) 촌장과 아내인 황현숙(49) 씨가 산다. 윤 씨 부부는 고령읍내에 잠시 일을 나간 터였다. 읍내에서 오래된 한옥을 철거하는 현장에 다녀왔다고 했다. 작품 재료도 구하고 아르바이트도 한다. 서양화를 전공하는 황 씨는 오래된 옛 기와에 그림을 그려넣는다. 작업실 벽에는 기와에 그린 작품들이 한가득 채우고 있었다. 복도를 따라 더 들어가면 조각가이자 행위예술가인 윤 씨의 작업실이다. 철거된 건물에서 가져온 유리문을 맞붙여 만들었다. 윤 씨가 "유리문 크기가 제각각이다 보니 벽이 균형이 맞질 않는다"며 웃었다.
윤 씨 부부가 이곳으로 들어온 건 1997년 4월이다. 경북 경산의 반지하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부부에겐 반가운 기회였다. 작가 8명이 함께 모여 폐교 사용 공모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8명이 교실 한 칸씩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윤 씨 부부만 남았다. "중화저수지에 달이 꽂힌 모습을 보고 반했어요. 그 아련한 물안개. 지금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
폐교를 조금씩 꾸미고 고쳐 살며 아이들도 함께 자랐다. 불편투성이지만 삶은 꽤 만족스럽다.
내곡미술촌에는 낡고 빛바랜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 작은 찻잔부터 온갖 골동품이 넘쳐난다. "고물상을 다녀보면 재미있는 물건들이 많아요. 발품을 팔면서 흥미로운 소품들을 구하는 거죠. 또 무게 단위로 살 수 있으니까 싸게 구할 수 있잖아요."
윤 씨는 "지역을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한다"고 했다. 가장 좋은 방식은 재능기부다. 그는 고령 지역의 장애인들을 위해 매달 한 차례씩 만들기 수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윤 씨 부부가 이곳에서 얼마나 더 머물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2년씩 교육청과 재계약을 하며 살고 있는데 내년에는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우륵 선생의 생애를 조각한 작품으로 내곡미술촌을 조각공원을 만들기 전까지는 머물고 싶다고 했다. "떠나게 되면 작품들은 모두 이곳에 기부할 생각이에요. 작품은 다시 만들 수 있으니까. 그 이후엔 자유롭게 여행도 하고 세계를 다니면서 여행스케치를 하고 싶어요."
◆고령 5일장과 대를 이은 대장간
고령읍내로 돌아왔다. 마침 장날이었다. 고령 5일장은 매달 끝자리 4, 9일 열린다. 너무 더운 날씨 때문인지 장터는 한산했다. 더위에 지친 상인들도 파라솔 그늘 아래서 연신 부채질을 해댔다. 소구레국밥으로 허기를 채우고 장터를 한 바퀴 돌았다. 여느 시골 장터가 별다르지 않은 풍경이지만 고령 장터에는 요즘은 보기 힘든 대장간이 있다. 이준희(40) 씨가 아버지 이상철(70) 씨와 함께 3대째 대장간을 하고 있다.
이준희 씨가 벌겋게 달아오른 도끼날을 머루에 얹고 망치로 내려쳤다. 화로에서는 사방으로 불티가 날린다. 도끼를 찬물에 담가 식힌 뒤 다시 화로에 집어넣었다. 붉은 쇠를 쳐대고 식히길 반복하길 여러 차례. 날을 갈고 나니 이 빠진 도끼가 새 도끼로 변신한다. 망치를 내려치는 이 씨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 씨도, 그의 아버지도 처음부터 대장장이를 시작한 건 아니었다. 아버지는 개인택시를 운전하다가 완강한 할아버지의 성화를 못 이겨 대장간으로 돌아왔다. 서른 살까지 대구의 한 주방용품 업체에서 일하던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것도 아버지 때문이었다. 50년 동안 망치를 두드렸던 아버지의 인대가 끊어져 어깨를 쓰지 못할 지경이 됐던 것. 이 씨는 아내와 상의 끝에 가업을 이었다.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대장간 옆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어요. 힘들게 일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으셨나 봐요." 대장장이는 중노동이다. 처음에는 자고 나면 손이 퉁퉁 부어 제대로 굽힐 수조차 없었다. 망치질에 낫이 날아가거나 손을 베는 일도 다반사다. 화로는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쇠가 녹아버릴 정도로 뜨겁다. 낫 하나가 나오려면 최소한 5번 이상 공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쇠뭉치가 하얘질 때까지 녹인 뒤 망치로 두드려 모양과 날, 손잡이가 들어갈 꽁지를 만든다. 예전에는 3명이 붙어서 망치질을 해야 했지만 요즘은 두드리는 기계가 나와 한결 수월하다. 날을 넓힌 뒤 갈아서 열처리를 하고, 다시 두드려 얇게 만든다. 쇠를 다루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담금질이다. 팔 때도 다시 담금질을 하고 날을 갈아서 판다. 이 씨는 "대장간도 문화유산인데 자꾸 사라지는 게 아쉽다"며 "고령시장 홈페이지를 만들면 인터넷을 통해 판매도 할 계획"이라고 했다.
◆소를 먹기 좋은 소고기로 만드는 사람들
고령읍에서 농협 고령 축산물공판장을 거쳐 성주군 용암면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읍내에서 공판장까지는 30분이 걸린다. 이곳에서 용암면까지 버스는 하루 두 차례 운행한다. 고령 축산물공판장에서는 전국에서 실려온 소들이 도축과 경매 과정을 거쳐 소비자에게 팔려나간다. 도축장 안은 깨끗했지만 특유의 냄새만은 진하게 남아 있었다. 소들은 움직이지 못하도록 좁은 우리에 들어가 머리에 망치총을 맞고 숨통이 끊어진다. 이어 천장에 설치된 고리에 매달고 머리와 내장, 가죽이 제거된다. 이곳에서는 소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소를 기절시키는 시스템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3층에는 가공 작업장이 있다. 소를 부위별로 잘라 포장하는 단계다. 천장에 걸린 고리에 매달린 2분도체(소를 2등분으로 자른 상태)를 식육처리기능사들이 부위별로 분해해 작업대 위에 올린다. 발골사들이 육류의 뼈와 살을 분리하면 정형사들이 발골을 거친 육류의 지방과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해 포장한다. 고기의 결이 살짝만 상해도 상품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예민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소는 도축된 후 하루 동안 차갑게 숙성되기 때문에 지방과 근육이 굳어 있어 손질이 쉽지 않다. "아무래도 등급이 높은 소들은 칼이 잘 나가는 편입니다. 비거세우나 황소, 늙은 젖소 등은 뼈가 딱딱하고 고기가 질겨서 작업이 쉽지 않죠." 축산물공판장을 위탁운영하는 가야축산 이택우 대표가 설명했다. 같은 소의 부위마다 맛이 다르다. 등심은 중간대가 가장 좋은 부위다. 목심 쪽으로 올라가면 질기다. 갈비살은 7, 8번 갈빗대 부분이 연하고 마블링도 좋다. 어린 암소가 가장 비싸지만 연하고 맛있고, 비거세우는 질기지만 구수한 맛이 난다. 지방이 많은 소가 등급이 높다 보니 지육 400㎏을 작업하면 지방이 100㎏을 넘는다. 사료를 많이 먹여 덩치만 키우기 때문이다. 갈빗살이나 안창살, 토시살, 등심 등 특정 부위의 소비가 집중된 점도 문제다. 이 대표는 "구이용 부위만 수요가 집중되다 보니 소값이 내려도 특정 부위의 값이 내리질 않는다"고 했다. 돼지도 고기의 양과 지방량에 따라 A~D등급으로 분리된다. 암퇘지의 육질이 가장 부드럽고 거세돈과 비거세돈으로 구분된다. 붉은빛이 강한 고기는 질긴 편이고 연분홍색이 가장 맛이 좋다.
글'사진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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