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별별 세상 별난 인생] 할리 데이비슨에 빠진 김동호 씨

투둥~ 엔진 사운드의 전율, 수천만원도 안아까워

할리 데이비슨(Harley-Davidson)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 까다로운 2종 소형면허 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몇 천만원의 거금을 눈 질끈 감고 지출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아내를 설득해야 한다. 무엇보다 달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여기에 자연과 사람을 사귈 준비는 기본. 이 모든 준비를 끝내야 마침내 할리 데이비슨을 얻을 수 있다.

한미병원 부장 김동호(46) 씨는 '할리'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고막을 두드리는 경쾌한 엔진 굉음, 노면의 굴곡을 그대로 전해주는 흔들림, 공기의 미세한 입자까지 느껴지는 강한 맞바람. 질주의 순간, 바람과 엔진 진동 소리가 어우러지면서 온몸이 떨린다. 짜릿한 전율의 순간이다.

투둥~투둥~~두둥둥~두둥둥~~ 시동을 켜자 엔진 소리가 베이스음으로 낮게 깔리는 듯하더니 이내 말발굽 소리처럼 엇박자로 울리며 점점 커진다. 이 소리를 들을 때마다 김 씨의 심장은 뛴다. 주말이나 휴일이 되면 새가 창공을 날 듯 본능적으로 할리에 몸을 맡기고 도로를 질주한다.

할리의 매력에 대해 그는 주저 없이 답한다. "말발굽 소리, 흥분되는 소리 같은 '두둥 두둥' 엔진 소리죠." 할리의 엔진 진동음은 인간의 심장 고동 소리와 같다. 할리에 몸을 실으면 하나의 심장으로 달리는 듯한 희열을 준단다. 단순히 탈것이 아니라 같은 피가 흐르는 내 몸의 일부인 듯한 따뜻함. 그가 할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김 씨는 "할리를 타면 자유가 느껴진다"고 했다. "우리가 꿈꾸는 것은 일상으로부터 해방감을 느끼는 자유입니다. 한때 잘못된 문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할리 데이비슨을 타는 사람들은 교통법규를 지키는 자유인들입니다."

김 씨는 할리가 스트레스를 푸는 정도가 아니라 잡념을 깨끗이 사라지게 할 정도로 내 안의 찌꺼기를 청소해준다고 했다. "할리를 타고 길 위에 서면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습니다. 골프나 등산도 좋다지만 할리 데이비슨에 비할 바가 아니에요. 또한 자연을 배우고,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며 그들을 통해 인생을 배웁니다."

김 씨가 '할리 데이비슨'을 처음 만난 것은 2006년. 배기량이 적은 스포스터를 샀다. "잠이 오지 않았어요. 끌고나가야 하는데 밤은 왜 그렇게 길던지."

구입 초기 한동안은 퇴근 후면 몰고나가 시내와 근교를 마구 돌아다니곤 했다. 요즘은 한 달에 한두 번 할리 데이비슨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한티재와 헐티재, 운문사 등의 대구 근교로 드라이브를 나간다.

김 씨는 속도보다는 '문화'를 즐긴다고 했다. "오토바이 탄다고 하면 사람들은 '시속 몇 ㎞까지 달려 보셨어요?'하고 묻는데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할리 데이비슨의 적정 속도는 시속 80~100㎞ 정도죠. 속도보다는 달릴 때의 주변 풍경과 배기음, 오토바이가 주는 진동 등을 즐기는 겁니다." 주말에 교통 체증과 상관없이 맘껏 떠날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점이라고 했다. "경치 좋은 찻집에서 차를 마시고 맛집 투어도 합니다." 자동차에 타고 있을 때와는 달리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 모든 감각을 동원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오토바이만의 장점이라고 했다.

2009년에는 스트리트 글라이드(1500㏄)를 구입했다. 무게만 400㎏(튜닝한 무게)이 넘는다. "많이 들었어요. 튜닝비까지 합하면 4천만원이 넘어요."

아내의 반대가 심했다. 다행히 아내의 반대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할리 데이비슨이 생각만큼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또한 할리 데이비슨을 타면서 활기가 넘치고 매사에 긍적적으로 변한 저의 모습을 보면서 지지자로 돌아선 거죠. 1년에 몇 번씩은 가족동반 특별투어를 가기 때문에 가족끼리 더 친해집니다." 아이들을 할리에 태우고 시원한 공기를 함께 마시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단다.

김 씨는 "할리 동호인들은 스피드보다 소리를 즐기기 때문에 속력도 그리 많이 내지 않는다"면서 "투어링을 할 때 경험 많은 라이더가 앞장서고 후방 라이더가 안전을 도와주면서 교통질서도 잘 지킨다"고 했다.

할리는 그의 일상 또한 바꿔 놓았다. 할리를 만나면서 건강도 더 좋아졌다. 운전을 위해 술을 줄였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산천으로 투어를 떠나면 자연을 호흡하며 호연지기를 기른다. 전국 곳곳에 숨어 있는 맛집들을 순례하며 영양가 높은 음식을 접하다 보니 몸도 한결 가뿐해졌다.

김 씨는 모터사이클은 마흔 넘어서 탔으면 한다고 했다. "어린 시절 바이크를 타던 때를 생각하면 너무 위험했어요. 40대는 돼야 자기를 컨트롤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할리를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를 경험으로 아는 세대니까. 또한 가능하면 동호회 중심으로 즐기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김 씨는 언젠가는 미국 현지에서 열리는 HOG(Harley-Davidson Owner's Group) 축제에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수십만 할리 데이비슨들과 함께 달리면 정말 멋질 것 같지 않습니까?"

사진'박노익 선임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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