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인 부인에게 스트레스란?" "남편이 늦게 들어오는 것."
"중년인 부인에게 스트레스란?" "남편이 일찍 들어오는 것."
"남편들에게 스트레스란?" "그런 부인이 집에 있는 것."
이것은 개그콘서트에서 하는 '현대 레알 사전'이라는 코너의 한 장면이다. 국어와 관련된 칼럼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을 언급하면 대개 우리말 오용 사례를 지적할 것이라고 예상하게 된다. 그렇지만 명절날 성룡 영화 하듯 한글날만 되면 뉴스 첫 꼭지에 나오는 그런 뻔한 이야기를 굳이 여기에서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개그콘서트의 예를 든 것은 일단은 매우 재미있어서이고,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이것이 언어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 든 예에서 '스트레스'라는 것은 의미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면서 다양한 의미를 생성함을 보여준다. 이것은 언어 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의 생각과 유사한 면이 많다. 비트겐슈타인은 후기에 언어 놀이라는 개념을 통해 언어가 사전에 규정된 대로의 고정된 성격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인 인간의 조건에 의해서 규정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삶의 현장에서는 똑같은 말이 다양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손주에게 "우리 강아지"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할머니가 손주를 비하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표현이라고 아는 것은 사람들이 삶의 맥락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안 그렇지만, 예전에는 학교에서 "내일 장학사가 온다"라는 말이 교사들에게는 '가짜 문서 만들어 놓으라'는 의미이고, 학생들에게는 '유리창 청소하라'는 의미를 가졌다. 한 학생이 인터넷 학급신문에 장학사란 '학교 유리창 청소 검사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네이버 사전에는 '교육 목표·교육 내용·학습 지도법 등 교육에 관한 모든 조건과 영역에 걸쳐서 교육 현장을 지도'조언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교육 전문직 공무원'으로 되어 있다는 대단한(?) 발견을 올렸다. 그랬더니 다른 학생은 그 기사에 열광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교장 선생님이 '교감, 환경부장과 더불어 학교의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해 파견된 위생부 삼총사 중 맏이'가 아니었다는 새로운 분석 기사를 올렸다.
학생들의 말이 버릇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런 유머는 삶의 모습을 어떤 욕심도 없이 바라볼 때 생길 수 있는 재치와 감각에서 나오는 것이다.(장학사나 교장에 욕심이 있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그것은 유머가 아니라 뼈 있는 말이 된다.)
내가 이 칼럼을 부탁받았을 때의 제목이 "재미있는 우리말 이야기"였다. '재미있는'이라는 말에 걸려서 글 한 줄 못 쓰다가 결국 '재미있는'을 빼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재미있다'는 말이 실제 삶에서는 매우 '재미없다'는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민송기<능인고 교사·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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