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병원에 간호사가 부족하다] <상>중소병원은 연중 구인난

200병상 병원 열었지만… 인력 없어 절반도 가동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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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차 중소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이 격무에다 낮은 임금으로 이직이 심해지면서 해당 병원들은 간호사를 구하지 못해 병상을 운영하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해지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 최근 문을 연 대구의 한 병원은 병상만 200여 개를 갖추고 있지만 병동 간호사가 11명밖에 없어 60개 병상에만 환자를 받고 있다. 텅 빈 환자 침대에는 아직 시트조차 깔려 있지 않다.
. 최근 문을 연 대구의 한 병원은 병상만 200여 개를 갖추고 있지만 병동 간호사가 11명밖에 없어 60개 병상에만 환자를 받고 있다. 텅 빈 환자 침대에는 아직 시트조차 깔려 있지 않다.

요즘 병원 곳곳에서 '간호사 모집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병원 몇 곳을 제외한 지역의 크고 작은 병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간호사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또 간호사를 구하는 곳이 많다 보니 1, 2년만 일하고 다른 병원으로 떠나는 경우도 많아 '간호사를 모셔와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지역 중소병원들의 현실은 어떻고, 이처럼 간호사가 부족한 이유는 무엇일까?

◆ 간호사 못 구해 '진땀'

대구의 공공의료기관인 대구의료원. 값싸고 질 높은 의료 서비스로 환자들이 선호하는 병원이지만 이곳에는 남모를 고충이 있다. 바로 간호사 채용이다. 이 병원은 지난해 간호사 50명을 공채로 모집했지만 35명만 응시해 초유의 미달 사태가 발생했다. 원래 일정 기간 교육을 거친 뒤 평가에 따라 합격자를 정식 채용할 예정이었으나 의료원은 이들 모두를 합격시켰다. 6개월 교육 기간 동안 30명이 넘는 간호사가 그만둬 환자를 돌볼 간호사가 부족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

해가 갈수록 간호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대구의료원 측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온 신입 간호사들은 1, 2년 안에 70% 정도가 사표를 던지고 나간다고 설명했다. 또 현장에서 활발히 일하는 3, 4년차 간호사들도 타 병원의 '이직 콜'을 받고 나가는 경우가 많다. 결국 1, 2년차 신규 간호사와 40, 50대 간호사만 많은 '허리가 부족한' 인력 구조가 됐다. 올해 10월에도 공채를 할 예정이지만 걱정이 태산이다. 대구의료원 이태준 행정처장은 "공공 의료기관이라 급여는 대학병원보다 낮고, 업무 강도는 비슷한 편이다. 일이 힘드니까 젊은 간호사들이 1, 2년만 일하다가 급여가 높고, 업무 강도가 낮은 타 병원으로 떠나는 것"이라며 "지역 간호학과에 찾아가 채용 설명회를 하고 싶어도 학생들이 임금 수준부터 먼저 물어보니 이들을 붙잡을 무기가 없다"고 털어놨다.

비단 공공 의료기관만 간호사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다. 지역 중소병원의 상황도 심각하다. 병상 100여 개를 갖춘 대구 한 정형외과 간호부장 A씨도 간호사 채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근 재활 병동을 새로 만들면서 간호사 수요가 늘었지만 재활 환자를 돌볼 간호사를 아직도 다 구하지 못했다. 이 병원도 간호사들의 잦은 이직으로 진통을 겪었던 터라 급하다고 아무 지원자나 뽑을 수 없다. A씨는 지원자 이력서에서 가장 먼저 이직 횟수와 근속 연수를 확인한다. 전체 경력이 아무리 길어도 한 직장에서 1년도 못 채우고 자주 옮기는 간호사라면 또 이직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 A씨는 "면접을 볼 때 간호사들은 연봉과 나이트(야간 근무), 오프(쉬는 날) 개수를 가장 먼저 묻는다. 이 중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에 하나라도 안 맞으면 합격해도 오지 않는 것"이라며 "요즘 젊은 간호사들은 밤 근무를 싫어해서 대부분 외래 쪽으로 가려고 한다. 지금 우리 병원에도 30대 후반 간호사가 제일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뺏고 뺏기는' 간호사 쟁탈전

신규 병원들은 간호사가 부족해 입원 환자를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최근 새로 문을 연 대구의 B병원은 최신식 의료 장비와 각 분야 전문의들은 다 채용했지만 정작 간호사를 못 구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병상만 200여 개를 갖추고 있지만 60개 병상에만 환자를 받고 있다. 병동 간호사가 11명밖에 없어 3교대로 근무하면 간호사 1명이 10명 넘는 환자를 봐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 이달 초 간호사 5명을 추가로 채용했지만 출근날이 되자 2명만 병원에 나왔고, 다음날이 되자 이 2명도 병원에 출근하지 않았다.

이 병원 원장 C씨는 간호사 급여 수준을 높여서라도 간호사를 뽑을 계획이다. C씨는 "각종 생활정보지와 인터넷 구직 사이트에 간호사 모집 공고를 올렸지만 아직도 간호사를 다 못 구했다. 신규 병원은 간호사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낮아 쉽게 이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인건비가 부담되기는 하지만 타 병원보다 높은 급여를 주고 채용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고 한숨지었다.

지역 중소병원들은 이제 '간호사가 병원을 고르는 시대'라고 말한다. 현장을 뛰는 간호사 수는 제한돼 있는데 간호사를 필요로 하는 병원이 늘다 보니 더 높은 급여를 내세워 간호사를 빼앗아 오는 것. 이 병원 간호과장 천모 씨는 "간호 면허를 갖고 있어도 집에 쉬고 있는 간호사를 당장 현장으로 불러낼 수는 없다. 인맥과 학연을 이용해 문어발식으로 주변 간호사에게 연락을 해 '이직 의사'를 물어보고 당겨 오는 식이다. 현재 간호사 채용 체계는 뺏고 뺏기는 시스템"이라고 털어놨다.

◆ 간호사, 얼마나 부족하나?

이처럼 병원에 간호사가 부족한 이유는 면허를 가진 간호사 중 40%가량만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의 '의료인별 면허신고 현황'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으로 면허를 가진 간호사는 29만4천599명이지만 의료기관 근무자는 12만936명에 불과하다. 의사는 면허 보유자 79.8%가, 한의사는 84.7%가 의료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것과 상반된다. 대구에서 활동 중인 간호사 통계는 따로 없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대구간호사회에 등록한 간호사는 총 7천350명으로 나타났다.

유독 중소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만 모자라는 것은 열악한 근로 환경과 업무 강도에 비해 낮은 급여 수준 때문이다. 영남이공대 간호학과 장희정 교수는 "지역의 한 대학병원은 간호사 합격 발표 뒤 1, 2년을 기다려야 발령이 날 정도로 간호사가 많이 몰린다. 중소병원의 경우 체력 소모가 많은 3교대 근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급여가 작고, 복지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니 간호사들이 외면하고 차라리 집에서 쉬는 편을 택하는 것"이라며 "또 함께 일하던 동료가 그만두면 업무 강도가 두 배로 세지고, 이를 견디지 못하는 간호사가 그만두는 식으로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간호사 수가 환자의 생명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것. 최근에는 간호사가 더 많아질수록 많은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을지대 간호학과 김윤미 교수가 2009년 1월부터 12월까지 수술 환자 11만1천5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수술 환자 1천 명당 기대 사망자 수가 71명이었던 간호 6, 7등급 의료기관이 4, 5등급이 됐을 때 사망자 수가 39명으로 감소했고 2, 3등급은 38명, 0, 1등급은 17명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익명을 요청한 25년 차 간호사 김모(46'여) 씨는 "환자에게 어떤 의료 행위를 하고, 어떤 약을 언제 투약해야 할지 결정하는 일은 의사가 하지만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간호사가 한다. 간호사 한 명이 바쁘게 환자 수십 명을 한꺼번에 돌보다 보면 환자 한 명 한 명 상태를 꼼꼼히 챙기기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기획취재팀=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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