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맛 향토음식의 산업화] 강릉 초당순두부

콩과 바닷물 만나, 새하얀 뭉게구름, 술 도둑, 밥 도둑

술도둑인 초당모두부와 밥도둑인 초당순두부, 순두부전골을 한상차림으로 차렸다.
술도둑인 초당모두부와 밥도둑인 초당순두부, 순두부전골을 한상차림으로 차렸다.
바닷물을 이용해 명품 두부를 생산하는 강릉 초당마을내에는 미끈하고 훤칠한 소나무 숲속에 초당두부촌이 형성되어 있다.
바닷물을 이용해 명품 두부를 생산하는 강릉 초당마을내에는 미끈하고 훤칠한 소나무 숲속에 초당두부촌이 형성되어 있다.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 초당순두부(草堂純豆腐)의 고향마을은 입구부터 해풍에 일렁이는 소나무의 늘씬한 품새가 열대지방 야자수의 분위기를 능가한다. 송림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강릉시가 관리하고 있는 이곳엔 약 200여 년 된 빽빽한 소나무 숲이 잘 가꾸어져 있다. 땅 소유권은 주민들이 갖고 있지만 숲은 강릉시청에서 관리한다. 태풍에 가지가 부러져도 맘대로 치우지 못한다. 당국이 가지가 부러진 원인을 조사한 후에라야 치울 수가 있다. 강릉시는 약 4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강릉 초당두부의 산업화와 명품화를 위하여 초당마을부터 명품으로 다듬어내고 있다.

◆일본, 인도 찾는 명성

초당두부의 산업화는 1930년 먹고살기가 어려웠던 시절 현재 원조초당순두부집(강릉시 초당동 초당순두부길 77-9호) 대표인 김훈회(33) 씨의 조모 조동인 씨가 처음으로 바닷물을 이용해 두부를 만들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 한동안은 그리 유명하지 않았으나 지금의 강릉 중앙시장에 좌판을 펼치고 두부를 파는 조 할머니의 이야기가 방송과 신문을 통해 보도되면서 초당두부의 유명세가 전국에 알려지게 됐다. 그 이후 초당마을에서 약 10여 가구가 차례로 두부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초당마을에서 만들어지는 두부라 하여 초당두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원래는 두부를 만들기만 했지 지금처럼 두부를 재료로 한 음식점은 없었다. 그러다가 1986년 당시 강릉시장의 권유로 초당마을에서 처음으로 식당을 열고 영업을 시작한 원조초당순두부집을 시작으로 약 20여 호가 차례로 문을 열게 되면서 지금의 초당두부마을이 형성 됐다.

역사적 연원은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아버지로서 삼척 부사를 역임한 초당 허엽(許曄 1517~1580) 선생이 집 앞 샘물로 콩을 불리고 갈아 바닷물로 간을 맞추며 두부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자 자신의 호를 붙여 초당두부라는 명칭이 탄생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원조초당순두부집은 홍성원 작가의 '한국 맛있는 집'과 '전국 맛있는 집'에 실리기도 했다.

식당 입구의 미끈하고 훤칠한 100여 그루의 소나무가 15도 각도로 구부정하게 인사를 하며 오는 손님을 정중히 맞이하는 이 집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지난 2004년 MBC 드라마 '귀여운 여인'의 촬영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솔향 가득한 식당 입구에 늘어진 소나무들의 처진 가지도 여유롭기 그지없다. 소나무 아래엔 해당화가 피어 있다. 2009년 일본 NHK방송을 통해 일본에도 소개되면서 일본 단골손님도 적지 않게 찾는다. 지금은 조동인 할머니의 아들 부부에 이어 손자 김훈회 씨가 가업을 3대째 이어가면서 강릉의 전통 향토 음식 초당두부의 명성을 전승해 가는 데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착한가게' 원조집

"저희 업소는 공장에서 만든 두부를 사다 파는 곳이 아닙니다. 직접 만들어서 판매합니다."

이 집 3대 주인인 김 씨의 안내로 식당 뒤편 두부제조 작업장을 둘러봤다. 마당에 천막을 치고 가마솥에다 콩물을 끓여 내면서 직접 두부를 만드는 맷돌두부 작업장이다. 앞쪽은 식당, 뒤쪽은 두부제조작업장. 특유의 전점후창(前店後倉)식이다. 작업장 내 두부 만드는 장면을 CC 카메라와 TV모니터를 통해 식당 내 손님들에게 24시간 방영하면서 두부 만드는 전 과정을 완전 공개하고 있다. 이처럼 직접 콩을 사다 두부를 만드니 재료원가 절감으로 음식 가격도 1만원을 넘지 않는다. 순두부백반 7천원, 반모-두부 5천원, 두부와 김치 1만원, 순두부전골 8천500원. 그래서 강릉시는 '착한 가게'로 지정했다.

식당 운영은 원스푸드(Once-Food) 형태다. 김 씨는 손님이 남긴 반찬을 가져가거나 너른 그릇 한곳에 쓸어 담아 재사용을 막아 달라는 '반찬 재사용금지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두부를 그만큼 만들지를 못하는데 어떻게 보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방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데 어떻게 유통과정에서 두부가 시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김 씨는 용평 리조트 내의 초당두부 전문식당 개점 요구도, 서울시내 유명백화점의 초당두부 코너 개설 요구에 대해서도 아무리 궁리해 봐도 응할 수가 없는 형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초당두부촌은 초당동 이외에도 강릉 경포대 해수욕장 입구와 정동진 해맞이공원 내에도 잘 조성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 공장 두부를 사 와서 음식을 만들지만 직접 바닷물을 이용해 생산하지는 못하고 있다. 초동마을 내의 20여 개소 두부전문 식당도 7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장 두부를 쓰고 있는 형편이기도 하다. 김 씨는 옛것을 그대로 지켜낸다는 마음으로 매일 아침 두부 수작업을 하고 있다.

◆간수 대신 바닷물

콩을 맷돌로 갈아 콩물을 만들고 삼베보자기로 뜨거운 물을 부어가며 두부 비지를 거른 다음 가마솥에다 30분 정도 잘 저어 가면서 끓인 후 약 10분 정도 더 뜸을 들인다. 그다음 깨끗한 바닷물을 넣으면 따뜻한 콩물이 서서히 응고되면서 몽글몽글한 순두부가 된다. 이 순두부를 거름보자기에 싸서 구멍 뚫린 나무틀에 넣고 무거운 맷돌로 짓누르면 물기가 빠져나가 바로 모두부가 된다. 초당두부의 특징은 간수를 쓰지 않는 점이다. 그 대신 바닷물을 쓴다. 바닷물 양이 많을 경우 두부가 딱딱해진다. 적으면 응고가 잘 안 된다. 그래서 바닷물 양 조절이 기술이다.

"바닷물을 넣은 뒤 저어 주거나 손이 많이 갈수록 두부가 딱딱해집니다. 바닷물에 콩물이 천천히 응고되는 탓에 두부공장에선 바닷물을 사용하지 않고 빨리 응고시키기 위해 간수를 쓰는 것입니다."

먹기는 금방 먹는 데 만들기는 금방 만들 수 없다는 게 김 씨의 슬로푸드 두부 이야기다. 공장두부와 달리 대량생산을 하지 않은 게 맷돌 초당두부의 전통 제조방식. 이것이 또 다른 경쟁력으로 발현된 셈이다.

콩은 인근 동해와 삼척지방 콩을 사용한다. 순 우리 국내산이다. 경기도 파주산 콩을 써봤지만 해풍을 맞는 강원도 콩만 못하다고 한다. 70㎏들이 한 가마로 보통 두부 5회 정도를 가마솥으로 끓여 내는 데 연간 100여 가마를 쓴다. 콩 한 가마가 평균 50만원 정도 하니깐 지역 농촌 경제에 미치는 기여도도 만만찮다.

"여름엔 가격이 오르고 매년 10월, 11월 수확기엔 내려서 저온창고를 지어 놓고 일년내내 쓸 콩을 저장해 둡니다."

소나무 숲으로 농사도 신통찮은 초당마을에서 콩과 바닷물이 만나 사람들의 손에 의해 신비의 두부가 탄생하면서 일체의 식품첨가물 없이 대를 이어오는 우리의 맛을 창출하고 있다.

◆술 도둑 모두부, 밥 도둑 순두부

1천500여 평의 넓은 부지이나 원조초당순두부집 식당 내부는 40평 정도다. 그렇지만 성수기엔 하루 평균 300만원, 비수기도 100만원의 매상을 기록한다. 차림상은 풋고추 된장박이와 무깍두기, 어묵조림, 배추김치, 양념간장, 두부비지 찌개. 무된장국으로 멸치 하나 없는 시골 반찬 그대로이다. 1㎝ 두께로 큼지막하게 자른 초당모두부는 식욕을 돋우는 아이보리 색깔과 구수한 냄새만으로도 군침을 돌게 한다. 갓 굳혀 내 뜨끈뜨끈한 모두부를 양념간장에 찍어 입에 넣으면 구수한 콩향기가 입안 가득 담긴다. 두부에서 쫄깃함을 느끼게 될 정도로 탄성이 높아 일반 공장두부와는 확연하게 다른 식감을 느낄 수 있다. 따끈하고 구수한 모두부에 차고 신 묵은지는 이합이라고 해야 한다. 삶은 돼지고기, 신김치 그리고 삭힌 홍어의 삼합에 버금갈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동주가 저절로 당긴다. 초당모두부를 술 도둑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이와 함께 초당순두부도 입안에서 씹힐 정도의 높은 탄성은 또 다른 두부의 경험. 양념간장과 만나면 환상의 맛을 창출하고 두부의 푸짐함으로써 밥상의 부족함을 다 아우른다. 모두부가 술 도둑이면, 부추와 표고, 느타리버섯, 당면을 넣고 끓여 낸 초당순두부 전골은 밥 도둑이다. 두부가 떨어지면 식당 문을 내린다. 많이 팔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 집 주인의 느긋함에 비하면 손님들이 안달이다. 이러니 주말만 되면 대기표를 받고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여름 휴가철인 8월 첫 째주와 연휴 때, 명절 연휴 때 연말연시 해돋이 때는 인산인해다.

##3대째 가업 잇는 원조집 김훈회 대표

"바닷물로 콩물을 굳혀 두부를 만드는 초당두부는 우리집 3대가 이어 온 강릉지방 향토음식입니다."

원조 초당두부 대표인 김훈회(33) 씨는 자신의 할머니가 1930년 강릉 초당동 현재의 자리에서 처음 시작한 초당두부 만드는 일을 아버지로부터 넘겨 받아 80년이 넘도록 가업으로 이어가고 있다. 2001년 군대를 전역하자마자 복학도 포기하고 가업에 뛰어 든 김 씨는 어릴 적부터 거들던 집안일이니 만큼 3일 만에 두부 만드는 일을 다 배웠다며 웃는다.

"가마솥으로 끓여 낸 콩물을 굳히는 데 쓰는 바닷물 양과 가마솥 장작불 조절이 비결이면 비결이지요."

전자계산과를 나와 컴퓨터를 전공했지만 좋은 두부 만드는 일이 좋아 전공을 포기했다고 한다. 아직도 아들이 하는 두부 일이 염려스러운지 김 씨의 어머니는 하루 동안 팔 두부를 준비해 주기 위하여 이른 아침에만 잠깐 일을 봐 주신다고. 앞으로의 계획은 이제 다섯 살배기인 아들 3형제에게 초당두부의 대를 잇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벌써부터 가업에 관심을 높이기 위해 '세뇌교육'중이라고. 손님들에게 전통 콩농사 농기구와 두부 만드는 기구를 차려 놓는 초당두부 전시관을 만들어 식당을 찾는 단골손님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겠단다, '옛 맛을 지켜 오면서 옛 멋도 되살리겠다'는 게 초당두부 김 씨의 소박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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