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병원에 간호사가 부족하다] <중>병동 간호사의 하루

환자 처방전 입력하는데 "컴퓨터하고 논다" 오해

지난 16일 대구의 한 병원에서 병동 간호사가 입원 환자의 혈당을 체크하고 있다. 이 병원의 내과 병동 입원 환자는 총 49명이지만 낮에 근무하는 간호사가 4명 밖에 없다.
지난 16일 대구의 한 병원에서 병동 간호사가 입원 환자의 혈당을 체크하고 있다. 이 병원의 내과 병동 입원 환자는 총 49명이지만 낮에 근무하는 간호사가 4명 밖에 없다.

간호사들이 타 직군에 비해 이직이 잦다고 이들만 비난할 일이 아니다. 잦은 이직과 퇴사 결정에는 열악한 근무 환경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현장을 뛰는 인력이 부족해지자 한 사람이 담당하는 환자 수가 증가하고, 간호사들의 업무 강도도 세지는 것. 특히 3교대로 근무하는 종합병원의 병동 간호사들은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고 하소연한다. 취재진은 대구의 한 2차병원을 찾아 병동 간호사들의 하루를 살펴봤다.

◆ 간호사 4명이 환자 49명 돌봐

지난 16일 오전 7시 30분 대구의 한 종합병원 내과 병동. 데스크 앞에 간호사 3명이 모여 업무 인수인계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504호 김미령(가명) 환자, 혈당 132㎎/㎗, 밤에 특이사항 없었습니다. 506호 서명수(가명) 환자는 코를 골아서 밤에는 휴게실에서 주무시니 확인하세요." 이 시간은 야간 근무자들과 낮 근무자들의 교대 시간. 환자 49명의 소소한 정보를 다 넘기는데 꼬박 1시간 15분이 걸렸다. 이 병원 내과 병동 수간호사 김모(47·여) 씨는 "전날이 공휴일이어서 시간이 좀 더 걸렸다. 환자 정보를 전달하는 이 시간이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3교대 근무는 낮과 저녁, 야간 근무로 나눠진다. 낮 근무자는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일하지만 제 시간에 마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과 병동 간호사는 총 12명, 입원 환자는 49명이다. 12명이 3교대로 돌아가며 일하고, 매일 간호사 1명이 휴무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보통 간호사 4명이 함께 일한다. 이 마저도 '스프린트' 간호사가 있기에 가능한 일.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낮과 저녁에 걸쳐 근무하는 간호사를 말하는데 보통 오후 8시가 다 돼 퇴근한다.

종합병원에서 수간호사는 '관리' 업무를 주로 맡지만 이 병원에서는 수간호사도 현장에 투입된다. 수간호사 김 씨는 병동을 돌며 환자 상태를 한 명씩 다 체크했다. 대변은 잘 봤는지, 잠은 잘 잤는지, 간단한 대화가 대부분이다. 이 병동에는 당뇨와 폐렴, 위암과 폐암 말기 환자들이 많다. 당뇨 환자의 경우 정기적으로 혈당을 체크하고 환자에 따라 인슐린 투약해야 해 간호사가 항상 긴장을 해야 한다. 김 씨는 "일손이 부족하니 환자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며 다른 병동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요"

간호사 4명의 업무는 각기 다르다. 올해 4월 일을 시작한 신참 간호사 정모(22·여) 씨는 병동을 돌아다니며 환자 혈당을 체크하고, 수액을 투약했다. 정 씨가 숨고를 틈도 없이 병동을 돌아다니는 탓에 말을 걸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정 씨는 이날의 '스프린트 간호사'로, 보통 신규 간호사들이 이 역할을 맡는다. "나이트(야간) 근무보다 스프린트가 더 힘들어요. 나이트보다 일하는 시간은 짧아도 낮부터 저녁까지 일이 계속되니까 끝나지 않는 느낌이에요. 특히 환자 혈관을 못 찾아 바늘을 여러번 꽂아야 할 때 환자한테도 미안하고, 저도 힘들어요."

나머지 간호사 2명은 데스크를 지키는데 이들이 컴퓨터만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주요 업무는 의사들이 진료 차트에 손으로 적은 환자 진료 내용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일이다. 처방 약과 검사 내용, 그리고 처방 이유까지 전산에 모두 남기고, 실수가 없도록 다른 간호사 1명이 한번 더 확인한다. 수간호사 김 씨는 "요즘 대학병원들은 대부분 전자의무기록시스템(EMR)을 사용해 의사가 컴퓨터에 직접 입력하지만 우리 병동에는 아직 이 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았다. 이를 정확하게 입력하지 않으면 환자에게 잘못된 약을 투여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간호사들이 의자에 앉아서 쉬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간호사들은 얼마나 바쁠까? 데스크에 업무를 보고있던 4년차 간호사 이모(25·여)씨가 일주일치 근무 일정표를 보여줬다. 8월의 휴무일(오프)은 총 10일. 광복절이 끼여 있어서 휴무도 늘었다. 이번주에는 수요일과 목요일 이틀을 쉬었고, 월·화·금요일에 낮 근무,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주말 야간 근무가 연속으로 잡혀있었다. 점심시간은 고작 30분이다. 4명이 교대로 먹어야 하니 본관 건물 식당에 가 밥만 먹고 병동으로 후다닥 달려오는 식이다. 이 씨는 "그래도 데이(낮) 근무는 나은 편이다. 이브닝(저녁)에는 오후 4~5시가 제일 바쁜데 응급 상황도 많이 터져 밥을 못 먹고 밤늦게 집에 가는 경우도 많아 항상 속이 쓰리다. 화장실가고 싶은 것도 잊을 정도면 얼마나 바쁜지 짐작이 가시느냐"며 한숨지었다.

◆ 병동 간호사, 한 달에 2명씩 그만두기도

병동 간호사의 업무는 이게 끝이 아니다. 본관과 내과 병동이 분리돼 있는 이 병원은 의사 처방전이 나오면 간호사들이 직접 본관 약국에 가서 약을 받아와야 한다. 이날 환자 약을 정리하던 이 간호사는 "본관까지 왕복 최소 15분이 걸린다. 하루에 수도 없이 약을 가지러 왔다갔다 해야하는데 일손이 부족해 병동에 있는 간병도우미 분들이 도와주시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간호사들은 투약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한다. 수간호사 김 씨는 "투약 사고는 100% 간호사 과실이다. 책임 소재를 떠나 환자 생명에 치명적인 일이다. 간호사들이 돌아가면서 약을 교차 체크하지만 인력이 부족하면 당연히 투약 사고 위험도 높아질 수 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이런 열악한 근로 환경 탓에 간호사들이 자주 사표를 낸다. 지난해에는 한 달 안에 2명이 한꺼번에 일을 그만둔 적도 있었다. 1~3년차 간호사들의 이직률이 높다보니 내과 병동 간호사 12명 중에 3년차 이하 간호사가 총 9명, 이중 경력이 1년도 안 된 신참이 3명이다. 김 씨는 "간호사 교육에만 6개월 정도 시간이 걸리는데 일에 익숙해질 만하면 병원을 떠나고, 또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 업무 과부하가 더 심해진다. 나는 26년간 한 병원에서만 일했지만 요즘 간호사들은 월급이 적고, 일이 힘들다보니 대우가 좋은 병원이 있으면 바로 옮긴다"며 "그들이 간다고 해도 붙잡을 수 없는 상황이 더 슬프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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