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로수 도시' 대구가 말라가고 있다

사유지 내 심은 가로수 관리 안돼 말라죽기 일쑤

대구 도심 가로수가 수난을 겪고 있다. 3일 오후 동구 동호동 도로변 사유지 내 느티나무가 고사(枯死)해 흉물로 전락했다. 동호육교 반경 50m 주변에는 고사했거나 잎이 말라가는 가로수가 20여 그루에 이르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대구 도심 가로수가 수난을 겪고 있다. 3일 오후 동구 동호동 도로변 사유지 내 느티나무가 고사(枯死)해 흉물로 전락했다. 동호육교 반경 50m 주변에는 고사했거나 잎이 말라가는 가로수가 20여 그루에 이르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대구 수성구 범물동 범안로 인근 가로수에 매단 가로등 모습. 대구 수성구청 제공
대구 수성구 범물동 범안로 인근 가로수에 매단 가로등 모습. 대구 수성구청 제공
수성구청은 6월 초 만촌네거리 가로수인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나무) 3그루에 누군가 구멍을 뚫은 흔적을 발견,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나무들은 한 달 만에 말라죽어 베어졌다. 수성구청 제공
수성구청은 6월 초 만촌네거리 가로수인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나무) 3그루에 누군가 구멍을 뚫은 흔적을 발견,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나무들은 한 달 만에 말라죽어 베어졌다. 수성구청 제공
노끈에 묶여 힘들게 자라는 가로수. 매일신문 DB
노끈에 묶여 힘들게 자라는 가로수. 매일신문 DB

이달 2일 오후 2시쯤 동구 동호동. 각산역에서 남쪽으로 100여m 떨어진 동호육교 아래 가로수 길이 나 있었다. 이곳은 인도를 가운데 두고 건물과 도로 각각 양쪽에 버드나무가 줄지어 있었다. 네거리 한 통신가게 앞 5~7m 높이의 한 느티나무는 아랫부분 3분의 1가량이 껍질이 다 벗겨진 상태였다. 드러난 나무줄기 속살에는 검게 핀 곰팡이가 점점이 퍼져 있었다. 썩어들어간 나무의 절단면에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담배꽁초가 끼어 있었다. 중간 부분도 짙은 갈색을 띠며 썩어 있는 껍질이 간신히 붙어 있었다. 나무 윗부분은 잎이 하나도 없이 잔가지만 바람에 움직였다. 가까이 가니 곰삭은 곰팡이 냄새가 났다.

도심에 나무가 많아 전국적으로 '가로수 도시'로 알려진 대구의 가로수들이 말라죽는 등 수난을 당하고 있다.

어떤 가로수는 누군가가 고의로 나무에 구멍을 내고 약품을 주입하는 바람에 한 달여 만에 말라 죽고 말았다. 또한 대로변 가로수들은 간판을 가리거나 떨어지는 진액 때문에 불편을 준다는 이유로 가지가 잘리거나 잘릴 처지에 놓여 있다. 가로수를 통해 본 대구의 시민 의식은 안타깝게도 낙제점을 밑돌고 있는 것이다.

◆가로수 '수난시대'

사유지 내 법적 조경면적 확보를 위해 심은 가로수는 상대적으로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가뭄에 물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했거나 나무 간격이 좁고 건물과 가까워 제대로 자랄 수 있는 생육환경이 조성되지 않고 있는 것.

동호육교 인근 50m 반경에 고사하거나 잎이 말라가는 나무는 20여 그루에 달했다. 그 중 90%가량이 건물 가까이에 자리한 사유지 내 가로수였다. 동호육교 바로 아래에서 20여m 떨어진 한 건물 앞 사유지에는 8~10m 높이의 말라죽은 느티나무가 버티고 있었다. 이 나무와 2m도 안 되는 곳에 또 다른 가로수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고사해 잎이 없는 나무줄기가 옆의 푸른 나뭇잎에 겹쳐질 정도로 가까이에 심겨져 있었다. 이는 늘어선 상가건물의 입구를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

고사한 또 다른 나무는 바닥의 흙이 패여 이식 당시 뿌리를 감싸고 있던 검은 고무 띠 일부가 드러나 있었다. 고사한 나무 이외 나무들도 손바닥 크기의 나뭇잎들이 끝 부분부터 갈색을 띠며 말라 들어가 있었다. 손으로 잎을 잡으면 잘게 바스러질 정도로 메말라 있었다.

동구청은 올여름 가뭄에 대응해 물차를 동원, 심은 지 2년이 안 지난 나무들을 위주로 물을 공급했다. 가로수는 이식과정에서 뿌리를 끊다 보니 다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선 3~5년 가까이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동구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가로수는 약 2만4천 그루이고 그 가운데 옮겨 심은 지 2년 이하인 나무는 약 1천여 그루가 된다.

동구청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건물을 지을 때 조경 면적을 일정부분 확보해야 하기때문에 사유지에 가로수를 심지만 사후관리가 소홀한 측면이 있다"며 "건축주가 물을 주거나 고사한 나무를 베어내는 등 관리를 해야 하지만 손을 놓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농약 등 약물 뿌려 고사시켜

수성구 범물동 용지네거리에서 동아백화점 사이의 지범로. 지범로 양쪽의 몇몇 나무들은 가지가 꺾여 떨어지고 줄기가 벗겨지는 등 훼손당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지범로 양쪽의 몇몇 가로수는 최근 한 달 가까이 철삿줄로 고정한 가로등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8공구 시공사가 전봇대 지중화 공사를 하면서 지난달 초부터 가로등을 나무에 매달았다. 지난달 25일 한 시민이 수성구청에 항의하자 같은 달 29일 시공사는 가로수에 달았던 가로등을 철거해 인근 아파트 철재 담 등으로 옮겼다. 현재 용지네거리에서 동아백화점 사이의 지범로 양쪽에는 각각 17'18개 등 모두 35개의 가로등이 인근 아파트 철재 벽이나 신호등 기둥, 전봇대 등에 달려 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8공구 시공사인 T업체 관계자는 "기존 전선을 땅 아래에 설치하는 작업을 하던 중 가로등 전봇대를 뽑자 밤에 어둡다는 민원이 들어와 나무에 임시 가로등을 달았던 것"이라며 "전체 가로등 중 일부만 나무에 달았었고 이마저도 현재는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겨 달았다"고 해명했다.

수성구 만촌동 만촌네거리 한 타이어매장 앞의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나무) 3그루는 올 6월 말쯤 밑동이 잘렸다. 약 한 달 전부터 서서히 말라갔고 구청이 나서서 물을 공급하고 영양제를 투입했지만 한 달도 안 돼 고사했기 때문이다. 수성구청은 6월 초 가로수 아랫부분에 구멍이 뚫린 것을 발견했다. 구청은 누군가 인위적으로 농약 등 약물을 넣어 생육상태가 나빠진 것으로 판단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현재는 8월 말 대신 심은 은행나무 1그루만 놓여 있는 상태다.

수사를 맡은 수성경찰서 형사과 관계자는 "주변 사람들을 대상으로 탐문을 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며 "고사한 나무 주위에 폐쇄회로TV도 없어서 누가 나무에 구멍을 뚫고 약품을 넣어 훼손했는지 확인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수성구청 공원녹지과 김장길 녹지담당은 "지범로 가로수에 단 가로등은 도시철도공사 중 임시로 설치한 것으로 시공사에 철거를 권고해 이행한 상태이고, 만촌동의 고사한 양버즘나무는 미관을 저해해 제거했고 그 자리에 생명력이 강한 은행나무를 심었다. 앞으로 추가로 1그루를 더 확보해 이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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