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리들은 1993년 이래 매년 8월 15일에 아시아 각국의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부전의 맹세를 해왔다. 올해 아베 총리는 이를 하지 않았다. 같은 날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이 역사를 직시할 용기를 가질 것을 촉구했다. 역사 문제를 둘러싼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이 정상회담을 거부하고 미국에 위안부 소녀상이 설치되자 아베 내각에서 한국에 대한 불만이 증폭되고 있다.(아사히신문, 8월 10일)
한국의 반일과 일본의 반한 대립은 39년 전인 1974년 8월 15일에도 있었다. 육영수 여사가 희생된 박정희 대통령 저격 사건이다. 그때 한국에서는 '반공'반일'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고, 일본에서는 '반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그러나 2000년대의 반일 vs 반한 구도는 1970년대와는 큰 차이가 있다.
1970년대 한국 정부는 일본의 정치사회 단체와 인사들을 친한파와 반한파로 구분했다. 1973년 8월 김대중 납치 사건으로 일본 사회에서 박정희 유신 체제에 대한 논란이 첨예화되고, 한반도 분단 상황을 반영하여 한국 지지파와 북한 지지파가 대립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규정한 반한파에는 북한을 지지하는 사회주의 세력과는 달리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존경하고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는 단체와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친한파에는 냉전 체제에 편승하여 한국에 대한 개발 협력을 추진하면서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는 단체와 인사들도 많았다.
김대중 납치 사건 이듬해 광복절 경축사를 하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22세의 재일 한국인 2세 문세광이 총을 쏘았다. 그는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한국말을 못 했으며, 심한 근시였다.(재일 한국인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언급하고 싶다) 당시부터 이 사건에 대해 많은 의혹이 제기되었고, 지금까지 해명이 되지 않고 있다. NHK 뉴스는 이 사건이 박정희 정권의 '자작극이 아니냐'는 코멘트를 내보냈다. 그러자 한국에서 반공'반일 운동이 폭발했다.
문세광의 권총은 오사카 파출소에서 도둑맞은 것이고, 그의 위조 여권은 일본 사람 것이었다. 그는 사건 직전 좌익의 일본인 친구와 조총련 인사와 인연을 가졌다. 범행 동기는 김대중 납치 사건과 유신 체제에 대한 분노였다. 그러나 한국 검찰은 그를 북한 간첩으로 몰아 같은 해 12월에 신속하게 사형을 집행했다. 일본 경찰 수사에서는 조총련과의 관계가 전혀 입증되지 않았다.
한국의 반공'반일 운동은 언론과 집회의 자유가 억눌린 유신 체제하에서 전개되었다. 그것으로 처벌된 사례는 드물다. 그러나 전년의 민청학련 사건이라는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는 사형 등 무거운 처벌이 내려졌다. 반공'반일 운동과 똑같은 시기였다.
일본에서는 한국 정부와 시민들의 반일 운동을 보고 국교 단절이 불가피하다는 소리도 있었다. 결국 정부 고위급 인사를 특사로 파견하여 박 대통령에게 사죄하고 일본 내 반한파를 단속한다는 구두 약속을 했다. 그러자 한국 정부는 돌변해서 한일 우호를 외쳤다. 일본도 한국에 대한 경제협력을 재개했다. 다음해 1975년 7월 한일 양국 정부는 문세광 사건의 종결과 김대중 사건의 수사 종결에 합의했다.
그러면 1970년대의 반일과 반한을 반추하면서 그 함의를 살펴보자. 첫째, 1970년대 한국의 반일은 '반공'반북'의 종속변수였다. 일본이 반공'반북을 공유하면 한일 우호가 도출되었다. 식민지주의 세력을 친한파란 이유로 끌어들이고 식민지주의를 비판하는 세력을 반한파로 낙인 찍어 배제한 결과이다. 말하자면 반공주의가 식민지주의를 용인한 것이다.
둘째, 1970년대 일본의 '친한파'는 냉전의 최전선에 있는 한국을 지원하는 대가로 미일 동맹의 비호 아래 식민지주의적 이념과 정책을 온존시켰다. 냉전 후 1990년대 중반 일본은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과의 갈림길에 있었다. 그러나 북한 핵 문제와 일본인 납치 문제로 인해 그에 대한 반동이 커져 버렸다.
셋째, 한국의 민주화와 냉전 종식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며, 오늘날 한국의 반일은 반공'반북의 종속변수가 아니게 되었다. 한편, 일본의 과거 '친한파'는 오늘날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면서 북한 및 중국과의 대립을 지렛대로 한일 협조를 모색하고 있다.
히로시마 시립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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