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단순 교통사고사로 처리됐던 고(故) 정은희(당시 18세) 양 사건이 집단 성폭행과 관련 있다는 검찰 수사 결과(본지 9월 6일 자 1'4면 보도)가 나오자 부실했던 경찰 초동수사에 비난 여론이 쇄도하고 있다. 일관된 증거와 의혹으로 유족들은 10년 넘게 재수사를 촉구했지만 묵살당했기 때문이다. 대구 경찰은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1998년 10월 17일 새벽, 사건이 있은 직후부터 정 양의 유족들은 15년 동안 정 양이 교통사고로 숨지긴 했지만 성폭행을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경찰은 조그만 의심도 하지 않았다. 유족들에 따르면 경찰은 사고 현장과 지척에서 발견된 정 양의 속옷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심지어 이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종결하기 위해 유족들에게 지속적으로 거짓말을 했다. 정 양이 사고 당시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숨긴 것은 물론 유족에게 "교통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면 수사를 시작하겠다"며 수사 의지를 아예 보이지 않았다. 수사 의지가 없는 경찰을 믿을 수 없었던 유족들은 청와대와 검찰 등에 사건의 전모를 밝혀달라며 수차례 진정했다.
결국 15년 만에 사건의 진실이 어느 정도 파헤쳐졌다. 그러나 경찰의 초동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더라면 유족은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15년이라는 세월을 허비하지 않았을 것이고 제2의 피해자(이번에 검거된 스리랑카인 피의자가 취업을 알선하겠다며 올해 초 한국 여성을 유인해 강제 추행한 사건)를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 양의 아버지는 "당시 경찰이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결론 내면서 유족에게 거짓말을 하고 수사 내용을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며 "일반인이 보기에도 단순 교통사고가 아닌데 왜 경찰은 그렇게 맞섰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시민단체도 발끈하고 나섰다. 대구참여연대는 성명을 통해 "이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종결한 당시 경찰, 검찰의 부실수사에 대해 심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고 반드시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며 "유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부터 하고 재수사 요청을 묵살한 원인을 규명해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8년 당시 고(故) 정은희 양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관 여모 씨는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서장이던 김용복 씨를 비롯해 형사과장 정규택 씨, 형사계장 주동철 씨, 반장 조규배 씨 등은 모두 2003년을 전후로 퇴직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대구경찰청 관계자는 "유족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다만 워낙 오래된 일이라 현직에 남아 있는 경찰로서 뭐라고 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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