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순재의 은퇴일기] 최고의 음식

누구에게나 가슴 먹먹한 음식이 하나쯤 있습니다. 보는 순간 그리운 사람이 떠올라 가슴이 아려오는 음식이 있는가하면, 행복한 시간이 생각나 저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것도 있지요. 음식은 이처럼 추억과 사랑과 그리움을 키우고 발효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나 봅니다. 세월이 더할수록 음식에 사연이 쌓여가는 까닭입니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라는 말에 동의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그렇습니다. 음식에는 아름다웠던 시간이 녹아있고 사랑이 녹아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러울 때 어머니가 해주신 따뜻한 밥이 그립고 좋은 사람을 만나면 맛있는 밥을 함께 나누고 싶어지나 봅니다.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제임스 서클링은 어떤 와인이 가장 좋으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값싼 와인이어도 내 입맛에 맞고 편안히 마실 수 있으면 그것이 곧 좋은 와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이 가을 최고의 와인을 추천했습니다. 그것은 수백만원 하는 와인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근사한 저녁을 보내게 해 준 '바로 어제 저녁 그 와인'이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그는 최고의 음식이란 사랑과 시간을 빛내줄 음식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귀해서 혹은 지극히 비싸다는 이유만으로 최고가 될 수 없음을 말 하고 있는 것이지요.

추석이 가까워 옵니다. 추석하면 어떤 음식이 떠오르나요. 저는 사과의 달달한 향이 먼저 생각납니다. 어릴 적 먹었던 사과는 왜 그리 커고 빨갛게 예뻤는지요. 한 입 베어 물면 입 안 가득 퍼지는 맛과 향은 그야말로 환상이었습니다. 생각만으로도 침이 고입니다.

추억의 맛은 다소 과장되거나 그리움으로 포장되어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그것은 또 쉽게 우리를 과거의 행복한 순간으로 안내하곤 합니다. 그리고는 살며시 오늘의 힘듦을 잊게 만드는 마술을 부리지요. 추억의 음식이 최고의 음식인 이유입니다.

그 마법에 이끌려 명절이면 우리는 먼 길 마다 않고 고향으로 달려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추억과 사랑으로 버무린 음식 한 그릇으로 위로받고 새롭게 버텨낼 힘을 얻는 그런 마술 말입니다. 음식과 함께하는 힐링의 시간, 어쩌면 명절의 의미일 것도 같습니다.

맛은 마음을 먼저 찾아가나 봅니다. 벌써 추석의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김순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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