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과 설 명절을 실감하는 대표적인 요소는 명절 음식이다. 평소 보기 힘든 음식이 그득 차려질 때 명절 분위기가 피부에 와 닿는 것이다. 나라마다 다소간 차이는 있겠으나 명절 음식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데 있어 우리나라가 유별나다. 그 이유는 차례상이라는 절대적 기준의 영향도 있지만 과거 먹고살기 힘든 시절 명절'잔치 음식이야말로 목의 때를 벗기는 유일한 기회여서다.
안동'예천 등 경북 북부 지방에는 '잔칫상에 문어가 오르지 않으면 헛잔치 했다'는 말이 있다. 대구와 영천'청도 등 남쪽 지역은 돔배기나 소갈비찜이다. 평소 해산물을 접하기가 쉽지 않은 내륙 지방 특성상 명절이나 잔칫날에만 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 '없다'는 것은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다. 이런 실망감에 대한 반작용이 명절 음식을 만드는 여인들에게 강박관념이 되면서 명절 스트레스, 명절 증후군의 발단이 됐다.
요즘 명절이 끝나면 '돌싱'(돌아온 싱글)이 확 는다는 통계가 있다. 통계청의 '최근 5년간 이혼 통계'에 따르면 설'추석을 지낸 직후인 2, 3월과 10, 11월 이혼 건수가 다른 달에 비해 평균 11.5%가량 많았다. 매년 명절 때 가사일 분담 등 부부 갈등으로 이혼 건수가 급증한 때문이다. 소위 '명절 이혼'은 그냥 지나가는 소리가 아니라 사회적 현상이 된 것이다.
명절이 가족의 정과 유대 관계를 두텁게 하는 특별한 날이 아니라 불화의 장이 되는 현실은 생각해 볼 문제다. 한 설문 조사에서 이혼 여성 10명 중 6명 이상이 '전 배우자가 본인 가족만 챙겼다'고 응답한 것에서 명절 이혼의 배경이 드러난다. 시댁'처가 식구와의 어색한 관계, 과도한 가사 노동, 명절 음식 장만 등 경제적'심리적 부담이 부부 갈등과 이혼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된 것이다.
추수감사절에 미국 가정은 주로 칠면조 요리를 식탁에 올린다. 통째로 구운 칠면조 고기를 가장이 조금씩 접시에 덜어주고 조상에 감사하며 즐겁게 대화하는 자리다. 평소 차림에서 칠면조 요리만 보태는 정도다. 그러니 우리처럼 명절 스트레스니 증후군이니 하는 용어가 생길 리 없다. 시대가 변하면 형식과 양식이 변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예'(禮)나 '여성'이라는 고정된 관습과 인식의 틀에 계속 갇혀 있다면 명절 이혼은 더 늘 수밖에 없다. 이번 추석만큼은 음식 만드는 손길이 가볍고 먹는 입도 즐거운 명절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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