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영처의 인문학, 음악을 말하다] 산골짝의 등불…위로가 되는 노래

산골짝의 등불 노래가 실린 은희의 앨범 표지
산골짝의 등불 노래가 실린 은희의 앨범 표지

민요나 가요처럼 대중성을 지향하는 곡에서 고향은 가장 특별하면서도 도식적인 틀에 쉽게 짜 넣을 수 있는 익숙하고도 편안한 소재이다. 고향은 보호해 주고 보호받을 수 있는 친밀하고 안정된 공간이며, 집을 떠나 객지 생활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정체성 확인의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고향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가족의 존재이다. 그중에서도 어머니는 고향이라는 장소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고향에 대응하는 인물이다.

아늑한 산골짝 작은 집에/ 아련히 등잔불 흐를 때

그리운 내 아들 돌아올 날/ 늙으신 어머님 기도해

그 산골짝에 황혼 질 때/ 꿈마다 그리는 나의 집

희미한 불빛은 정다웁게/ 외로운 내 발길 비치네

산골짝의 등불(When it's lamp lightin' time in the valley)은 미국 개척자들의 노래이다. 한 번 집을 떠나면 쉬 돌아갈 수 없던 시절, 이 노래는 서부개척자들의 향수를 달래주고 위로해 주던 노래였다. 산골짝의 등불은 한때 수많은 남성 합창단의 주요 레퍼토리이기도 했다. 또한 세광출판사에서 펴낸 학생애창곡, 세계애창가곡집 같은 책들뿐만 아니라 교과서에도 실려 있어 학생들 사이에 널리 불리어지던 노래였다. 1970년대에는 가수 은희, 송창식 등이 이 노래를 취입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으며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다.

흔히 고향을 주제로 하는 곡들은 영원한 장소 감을 가진 어머니에 대한 향수에 기대어 위로받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머니는 고향에 머물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식을 기다리는 안정감과 영속성을 상징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아들에 대한 사랑은 딸에 대한 것과 달리 더 정성스럽고 지극했다. 머나먼 객지에 나간 아들을 한없이 기다리며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에는 절대자를 향한 깊은 신앙심이 담겨 있다.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믿음 또한 무조건적이다.

척박한 산골짝을 완전한 장소로 만드는 것은 이처럼 정신적 자양분을 제공해 주는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누구보다도 고향을 풍성하게 만드는 사람이며 존재의 근원으로서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아들이 어떤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올지라도 가장 기쁘고 반갑게 맞아 줄 사람이다. 이것은 동양과 서양이 다르지 않다. 해서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지향은 개인적 차원의 향수에서 벗어나 국경을 넘어서는 보다 큰 집단적 차원으로 승화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산골짝의 등불은 우리 정서 깊은 곳을 흔들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클수록 고향의 의미는 확대되어 현재를 감상적으로 만들어 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랑의 등불이 발길을 비추고 있어 거친 현실 속에 조금씩 흔들리면서도 여기까지 탈 없이 왔다. 원어 가사를 읽어보면 2, 3절에는 죄를 지어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아들의 심정이 담겨있다. 하지만 산골짝의 불빛은 간절한 그리움의 불빛이며 탕자를 기다리는 용서의 불빛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고향은 객지를 떠돌며 받은 수많은 설움과 상처를 회복하고 자아를 재구성하는 진정한 치유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초월적이며 신적이다. 그래서 자애로운 어머니가 계신 산골짝은 천국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산골짝의 등불은 언젠가 돌아가야 할 완전한 장소라는 점에서 유토피아적 의식이 저변에 깔려있다. 고단한 현실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이며 보다 영원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의식이 그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 노래는 가장 미국적이며 세계적인 노래가 될 수 있었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남아있는 사람, 그것은 고향 자체인 어머니이다. 추석이 점차 명절보다는 연휴의 개념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추세이다. 그대들 고향에 가 있는가? 산골짝의 등불은 지금 부재중인 한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서영처 시인'영남대학교 교책객원교수 munji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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