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겔트루트 수녀 한국 사랑, 파티마 종합병원 '주춧돌'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대구파티마병원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겔트루트 링크 수녀. 대구파티마병원 제공.
대구파티마병원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겔트루트 링크 수녀. 대구파티마병원 제공.

겔트루트 링크 수녀는 지금의 한국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와 대구파티마병원이 있도록 초석을 놓은 인물이다. 1933년 5월 2일 독일 툿찡 베네딕도 수녀회 모원에 입회한 뒤 4개월 만인 그 해 9월 15일 원산 수녀원으로 파견됐다.

한국인들과 함께 수도생활을 시작한 것은 한국인의 심성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힘든 시기를 거치며 어려움도 많이 겪었지만 한국에 대한 깊은 사랑과 이해를 갖게 됐다. 자신을 스스로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했다.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는 바람에 강제수용소에서 고난을 받은 뒤 추방돼 툿찡 모원으로 돌아갔다가 1956년 5월 7일 대구로 다시 돌아왔다. 신암동에서 수련장에 임명됐으며, 밤 늦도록 독일에 있는 지인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써서 도움을 청했다.

겔트루드 수녀 덕분에 1957년 9월 27일 병원 건물 2층에 성당을 건축했고, 1962년 8월 22일 종합병원으로 승격할 수 있도록 3층 건물을 증축할 수 있었다.

1967년 로마 총회에서 총장 수녀로 선출되면서 제2의 고향인 한국을 떠나야했다. 1982년 총장 임기를 마친 뒤 1983년 멀리 브라질 소로카바로 가서 1989년까지 한국 이민자들을 위해 봉사하기도 했다. 1989년부터 독일 툿찡으로 돌아가 성 베네딕도 집에서 10년간 살고, 1999년 3월 27일 90세로 선종했다.

고난의 땅인 북한을 그리워했고, 남한의 신암동을 사랑했으며, 한국을 사랑한 그는 이 땅에 묻히고 싶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국에서 눈을 감았다.

저서로는 북한 강제수용소 생활을 겪으며 쓴 시 '암흑과 폭풍 속의 너 영혼아!'가 독일어로 출판돼 베스트셀러가 됐으며, 우리말로 번역됐다. 은퇴 후 출간한 자서선 '하느님이 함께 하신 나의 생애'는 독일어로 출판된 뒤 영어와 한국어로 번역됐다.

김수용기자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이재명 대통령은 5일 육군사관학교에 대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고, 이에 대한 육사총동창회의 반발이 이어졌다. 총동창회는 대통령의 발언이 사...
삼성전자 '갤럭시Z 폴드8'의 역대급 사전예약에 힘입어 구미에서 열린 '2026 갤럭시 런칭 페스타 with 구미' 행사에는 200여 명이 ...
경북 지역 지자체들이 인구 방어선 유지를 위해 애쓰고 있으며, 구미시는 40만명 방어선 붕괴 위기를 겪고 있고, 고령군은 인구 3만명 회복을...
필리핀에서 중국인이 필리핀인으로 신분을 위조하여 전력망 사업에 개입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국가 안보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필리핀 이민국은 로런..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