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보릿고개 시절, 생존 위해 풀 뜯어먹다 익힌 약초 세상

주경야독으로 연구 외길

신전휘 대구경북한약협회 회장이 이달 초 조선시대 최고의 의서인
신전휘 대구경북한약협회 회장이 이달 초 조선시대 최고의 의서인 '동의보감'을 오늘에 맞게 풀어쓴 '약초사진으로 보는 동의보감'을 펴냈다.

약초사랑은 숙명이었다. 아니 사랑할 수밖에 없었단다. 청송에서 태어나 빈농의 자식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집안의 전 재산이래 봤자 논 3마지기가 전부였죠. 6남매가 배불리 먹기에는 식량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풀을 뜯어 먹을 수밖에 없었지요. 들로 산으로 달래나 냉이를 찾으러 다녔지요. 자연스레 먹을 수 있는 식물과 없는 식물을 알게 되었죠." 배가 고팠지만 낭만(?)은 있었다. "풀잎으로 꽃 반지를 만들거나 향기나는 분꽃으로 동네 처자들도 많이 울렸지요. 허허허."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고향을 떠나 부산으로 갔다. 부산에서의 삶은 힘들었다. 주경야독(晝耕夜讀). 낮에는 우동을 배달하고 밤에는 공부했다. 한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6'25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땅히 배울 곳이 없었다. "당시에는 한의사가 되는 길이 지금처럼 어렵지 않았지요. 그러나 지역에는 한의학을 배울 곳이 마땅히 없었지요. 지금 생각해도 서울로 못 간 것이 후회돼요."

군 제대 후 대구에 정착하고 나서야 약초를 연구할 수 있었다. 대구에서도 주경야독. 병원에 취직한 그는 낮에는 병원 일을 하고 밤에는 인근 한의원 등지에서 한약학을 공부했다. 5년 후인 1974년 약전골목에서 '백초당한약방'을 열 수 있었다. 비록 꿈꾸었던 한의사는 아니었지만 한약재를 다루는 일을 하게 됐다.

2007년 대구한의대학교로부터 명예 한의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향약집성방의 향약본초'를 집대성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듬해에는 제5회 류의태'허준 상을 수상했다. 지금은 영남이공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있다. 요즘은 신이 난다. 웰빙바람과 맞물려 전통의학에 대한 관심이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산행을 하면서 자생하는 약초와 식용식물을 채취하면서 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 참 기쁩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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