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전혀 없어서 답답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하는 말이 '알아야 면장이라도 한다'는 것이다. 그냥 보면 '면장'(面長)이라는 자리가 지식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자리인 것 같지만 '~이라도'라는 조사의 의미를 생각하면 면장 자리는 조금의 지식만이라도 있으면 할 수 있는 그런 자리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어릴 적 동산국민학교에서 운동회를 하는 날이면 으레 도개면장은 양복을 입고 내빈석 천막 아래서 금테가 있는 모자를 쓰고 앉아 있었다. 그때 보았던 면장이라는 자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아주 높은 자리였던 것 같은데 왜 사람들은 면장을 그렇게 표현했을까 하는 것은 의문이었다.
그런 의문에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는 설명은 '알아야 면장'에서 면장이 면의 행정을 맡아보는 으뜸 자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논어에 나오는 '면면장'(免面牆)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담장을 마주 대하고 있는 것과 같은 답답하고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인데, 이에 의하면 알아야 면장이라는 말은 사람이 지식이 있어야 답답한 상황을 면한다 정도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을 오늘날의 가장 근접한 표현으로 바꾸자면 (고스톱에서 패를 내는 전략들을) '알아야 면피박이라도 한다' 정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알아야 면장이라는 속담이 사용되는 문맥을 보면 어떤 지위든 그 일을 하려면 그것에 관련된 학식이나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데 조금 더 많이 사용된다. 이것은 속담에 사용된 한자가 우리가 잘 쓰지 않는 것이다 보니, 발음은 같고 익숙한 단어인 면장(面長)을 의식하게 되면서 미세하나마 의미가 바뀌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는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속담이 있다. 여기에 사용된 경마는 흔히 말들의 경주를 뜻하는 '경마'(競馬)로 생각하기 쉽다. 경마 잡힌다는 말이 어색하기는 하지만 그냥 대충 쓴다. 그러나 실제 경마는 말 고삐를 끌다는 뜻의 '견마'(牽馬)가 변한 형태이다. '견마를 잡힌다'는 것은 고삐를 다른 사람이 잡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말만 있으면 참 편하게 길을 갈 수 있을 텐데 하며 말 하나 장만하기를 간절하게 원하던 사람이 막상 말을 가지게 되면 말을 끄는 하인을 두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차 장만하면 운전기사 쓰고 싶다는 것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면장(免牆)이나 견마(牽馬)와 같은 경우 한자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더 이상 사용되지 않지만, 두 단어 이상이 결합하여 특정한 의미를 표현하는 관용적 표현에서는 남아 있으면서 비슷한 다른 말로 옮겨간 특수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예나 지금이나 면장 자리는 '~이라도' 하는 자리가 아니라 '알아야' 할 수 있는 자리이다.
민송기<능인고교사 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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