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에 디오메데스 수녀와 에나타 수녀가 한센병 환자 방문을 다니기 시작한 것이 한센병 환자 이동진료의 기원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다가 1966년 피부과가 신설되면서 조직적인 한센병 환자 이동진료반이 활발히 전개됐다.
이동진료의 첫 출발은 1966년 6월 선산, 상주, 성주군에서 시작됐다. 이동진료반을 다녔던 수녀는 1966년 장영춘(시모나) 수녀, 1967~1970년은 구명림(데오도라) 수녀와 윤무순(테클라) 수녀였고, 1970~1974년은 장영춘 수녀가 이었다.
1967년 4월부터는 칠곡, 군위, 금릉군을 포함해 6개 군을 이동진료하게 됐다. 1967년 봄부터는 이동진료 사업이 조금 달라졌다. 정부에서 병원과 이동진료반을 함께 구성해 정부는 의사, 검사기사와 자동차를 내주었고, 파티마병원에서는 윤무순'장영춘 수녀와 운전기사가 차출됐다. 대신에 일주일에 두 차례 다니던 것을 세 차례 갈 수 있게 됐다.
1968년 7월에는 월성군으로 확대됐으며, 12월에는 영덕군, 영일군이 포함됐다. 이렇게 9개 군으로 하여 정부와 파티마병원 이동진료반이 함께 일하다가 1969년에는 이동진료반이 경상북도로 이관되면서 정부팀과 분리돼 파티마병원 이동진료반은 성주, 선산, 상주, 문경, 금릉군과 김천시를 맡게 됐다.
1966년 첫해에 외래로 찾아온 자진 검사자는 574명이었고, 이동진료자는 650명이었다. 한센병 환자 발견을 위한 검진활동은 주로 군부대 징병검사와 학교 등에서 했는데, 월 3천 명이 검진받았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집중적인 검진 이동진료가 전개됐는데, 1980년대 환자 수가 가장 많았다. 이동진료 시 한 학급에서 검진을 해보면 보통 1명꼴로 한센병균을 발견했다.
1981년 이동진료 상황을 보면, 상주, 문경, 성주, 선산, 김천 등 이동진료와 파티마병원 내 다미안진료소를 통해 이뤄졌다. 무료진료 중 의료시혜는 전체 환자의 13%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이 밖에 경북 일대의 진료비 지불 능력이 없는 환자를 진료했다. 증가추세를 보였던 환자는 1990년 후반부터는 감소했다. 외래로 찾아오는 자진검사에서 신환자를 발견하게 됐고, 신환자는 월 평균 50건이 됐다.
김수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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