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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친일로 살다 부채왕으로 삶 마감한 윤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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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왕(負債王) 윤택영 후작은 국상 중에 귀국하면 아주 채귀(債鬼'빚귀신)의 독촉이 없을 줄로 안심하고 왔더니 각 채귀들이 사정도 보지않고 벌떼같이 나타나서 소송을 제기하므로 재판소 호출에 눈코 뜰 새가 없는 터인데, 일전에는 어찌나 화가 났던지 그의 형 '대갈대감'(윤덕영)과 대가리가 터지게 싸움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게 싸우지 말고 국상 핑계 삼아 아주 '자결'이나 하였으면 충신 칭호나 듣지.'

1926년 잡지 '개벽' 6월호에 실린 기사다. 윤택영(尹澤榮'1876~1935)은 엄청난 돈을 쓴 로비(?) 덕에 딸이 순종의 두 번째 부인으로 간택됐다. 자신은 두 살 많은 순종의 장인으로 해풍부원군(海豊府院君)에 봉해졌다. 낭비벽과 빚 때문에 순종은 늘 시달렸다. 친일파인 그는 일본이 1910년 8월 조선병탄 뒤 '조선귀족령'을 만들어 76명의 매국노에게 그해 오늘 작위를 줄 때 후작(侯爵)을 받았고 은사금도 최고인 50만4천엔을 챙겼다. 헤픈 씀씀이와 넘치는 부채(요즘의 3천억원쯤 된다고도 함)로 '채무왕','차금대왕(借金大王)'이란 조롱을 들었고 한 때는 파산선고로 후작 작위를 잃었다가 회복하기도 했다.

그는 빚으로 중국으로 달아났다 순종의 국장(國葬)을 틈타 잠시 귀국했는데 언론에 노출됐고 빚 독촉에 시달려 다시 중국으로 피했다 1935년 10월 객사했다. 그와 달리 아들 윤홍섭(尹弘變)은 독립운동을 했고, 광복후 정치권에 몸 담기도 했다.

정인열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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