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산, 내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주부 산악인 배재영 씨

몽블랑 정상 등정

석 달 전 알프스 산맥의 최고봉인 몽블랑 정상에 오른 주부 산악인 배재영 씨가 귀국하자마자 또 캐나다 로키산맥에서의 빙벽등반을 준비하고 있다. 13일 오후 대구클라이밍센터 암벽연습장에서 배 씨가 체력 훈련을 하며 몸만들기를 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석 달 전 알프스 산맥의 최고봉인 몽블랑 정상에 오른 주부 산악인 배재영 씨가 귀국하자마자 또 캐나다 로키산맥에서의 빙벽등반을 준비하고 있다. 13일 오후 대구클라이밍센터 암벽연습장에서 배 씨가 체력 훈련을 하며 몸만들기를 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올해 7월 배재영 씨는 알프스 산맥의 최고봉인 몽블랑 등반에 성공했다. 배재영 씨 제공
올해 7월 배재영 씨는 알프스 산맥의 최고봉인 몽블랑 등반에 성공했다. 배재영 씨 제공

이달 11일 오후 대구 수성구 수성동 실내 암벽등반장. 다부진 몸매의 한 여성이 벽면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여성은 한 손으로 홀더(암벽을 잡는 부분)를 잡더니 스파이더맨처럼 벽을 타기 시작했다. 한 달에 10일 이상은 산에 다닌다는 배재영(53'대구 중구 대봉동) 씨다.

배 씨는 아이들 세 명을 키우는 평범한 주부다. 배 씨는 15년 전까지만 해도 산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학창시절 산악회 활동을 한 적도 없다. 하지만 지금은 건장한 남성도 오르기 힘들다는 백두대간 종주부터 미국 휘트니 산, 로키산맥 등을 다녀온 준(準)산악인이 됐다. 올 7월에는 알프스 산맥의 최고봉인 몽블랑과 마테호른을 한 달간 다녀왔다. 올겨울 배 씨의 목적지는 캐나다 로키산맥에서의 빙벽등반이다.

배 씨가 '산 맛'을 보기 시작한 때는 1999년 봄. 30대 후반의 나이에 늦둥이 두 명을 연달아 낳고 난 뒤였다. 집안일에만 매진하면서 우울증이 찾아왔다. 어느 날 남편이 양육은 자신에게 맡기고 나들이를 다녀올 것을 권유했다. "밖에 나와 무작정 신천을 걸었어요. 걷다 보니 나온 곳이 앞산 고산골입니다. 고산골을 오르는 데 산으로부터 무한한 힘을 받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후 배 씨는 틈만 나면 가까운 산을 찾아다녔다. 큰딸이 생일선물로 준 산 전문 잡지를 보며 등반기술을 알음알음 익혔다. 그리고 그해 배 씨 홀로 무작정 지리산으로 2박 3일 등반을 떠났다. "지리산에 홀로 서서 여명을 바라보는 순간 말문이 막혔습니다. 산과 사랑에 빠진 거죠."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고 홀로 설악산을 등반한 뒤 배 씨는 한국산악회 대구지부에 가입해 산을 오르는 방법을 전문가에게 배우기 시작했다. 봄'여름'가을에는 암벽등반, 겨울에는 빙벽등반을 다니며 등산 기술을 몸에 익혔다. 3년 후 네팔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혼자 다녀왔다. 등산에 자신감이 붙은 배 씨는 다음해 캐나다 현지 산악인들과 함께 로키산맥을 다녀왔다. 2년 후 해발 4,418m의 미국 휘트니 산, 올해는 알프스 산맥의 최고봉 몽블랑(해발 4,807m) 등정에 성공했으며, 알프스의 명산 마테호른(해발 4,478m)은 강한 바람으로 인해 정상 정복을 200m 남짓 남겨두고 내려왔다. 수많은 산을 다닌 배 씨에게 으뜸은 팔공산이다. "누구에게나 어머니가 있듯 팔공산은 저에게 모산(母山)입니다. 팔공산을 오르면 어머니 품에 안긴 듯 포근한 마음이 듭니다."

산행을 하며 다행히 크게 다친 적은 없지만 20㎏의 가방을 메고 산을 오르는 것은 여성인 배 씨에게 엄청난 체력을 요구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10㎞ 아침 조깅을 하고 여유가 생길 때면 20㎏ 가방을 짊어진 채 20㎞를 왕복했다. 실내암벽등반을 통해 암벽'빙벽등반을 거뜬히 해 낼 수 있는 근력을 키웠다. 배 씨는 "산에 올라갈 때면 너무 힘들어서 다음부터는 산을 오르지 않겠다고 푸념한다. 하지만 정상에 올라 성취감을 맛보고 나면 하산할 때 다음엔 어느 산을 갈까 하는 즐거운 고민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배 씨가 산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가족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다. 큰딸은 두 명의 동생을 돌보고 가사일을 도맡아 했다. 남편 역시 배 씨를 항상 지지하고 응원했다. 배 씨의 꿈은 70세까지 꾸준하게 산을 오르는 일이다. 배 씨는 "산을 오르며 많은 것을 배웠다"며 "산은 내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고 말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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