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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 이야기]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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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난초에 대한 각종 정보가 많다. 너무 많아서 탈이다. 그러나 20년 전에는 난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고 몇몇 정보도 실효성이 지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필자는 군 복무 시 난을 알게 된 후 1990년 전역과 동시에 2년간 난 가게를 운영했다. 직접 산채한 난을 위주로 판매했기 때문에 실적이 거의 없었다. 군대에서 책을 통해 접한 난 상식을 밑천으로 창업한 사업은 사업이랄 것도 없었다. 능력 부재를 실감한 나는 사업을 접고 제대로 난 지식을 알기 위해 도서관과 헌책방을 누볐다. 그러던 어느 날 세계 최고봉으로 보이는 일본 난 상의 글을 접하게 되었다. 3대째 가업으로 난 농장을 경영하고 있으며 당시 아들에게 경영 수업을 시키는 우메모토 씨였다. 농장과 재배 기술, 경영방법에 대한 글을 읽었는데, 그중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도쿄대 원예학과를 졸업한 그는 난을 잘 기르려면 학문적인 이론이 중요하다고 했다.

글을 읽은 후 현장기술과 지식을 겸비한 한국 최고 난 대가의 제자로 입문해 기술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학문적 이론을 겸한 대가가 단 두 분이 있었다. 한 분은 경북대 원예학과를 나온 '매란 정' 대표 고 백영관 씨이고, 다른 한 분은 영남대 원예학과를 나온 '영남난원' 정정은 대표였다. 나는 정정은 대표를 모시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린 후 마음을 얻으려 정 대표가 자주 다닌다는 볼링장에 취직했다. 7개월간 눈도장을 찍은 후 마침내 제자로 입문했다. 약 20개월의 공부기간 중 허드렛일만 6개월을 했다. 수련 동안 고가의 난초가 분실돼 누명을 쓰고 쫓겨나기도 했다.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열심히 한 끝에 1995년 공부를 끝냈다. 정 선생님은 "좁은 지역 난 계에서 사제지간이 같이 있을 수는 없다"고 하면서 난 계를 홀연히 떠났다. 그리고 몇 가지 당부 말씀을 했다. 남을 속이려 하지 말고 대학에 가서 학문을 익히라고 했다. 그리고 정론을 만들라고 당부했다. 나는 선생님의 당부를 잊지 않고 실천해 업계 유일의 박사와 대한민국 명장이 됐다. 그 하나의 실천으로 초보자들이 아파트나 옥상에서 쉽게 기를 수 있는 '저압습식'(低壓濕式) 재배 매뉴얼을 완성해 전국의 난 농가와 애란가들에게 보급하고 있다.

이대건(난초 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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