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이 끝난 뒤 마펫 원장은 미국, 독일 등에서 많은 기독교 후원자들 및 후원 단체들의 지원을 받아 병원시설을 확충'신축하고 현대식 의료장비를 도입했다. 아울러 1967년에는 병원 발전 5개년 계획을 세워, 모두 200만달러 이상의 모금운동을 펼쳤다. 모금운동의 기적같은 성공 덕분에 1972년에는 5개년 계획의 완성을 보게 됐다. 마펫 원장이 재임한 이 기간을 많은 사람들은 '동산기독병원 중흥의 시대'라고 부른다.
◆넘쳐나는 전쟁 고아 위해 아동병원 지어
전쟁이 끝나자 거리에는 고아들이 넘쳐났다. 대구시내에만 고아원 20곳이 있었고, 근교에는 29곳이 있었다. 고아들을 먹고 재우기도 힘든 상황에서 이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와중에 고아들을 위한 병원 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선명회(World Vision)의 로버트 피어스 박사가 동산병원에 5만달러의 기부금을 희사했다. 마펫 원장이 이 돈 외에 유엔한국재건단(UNKRA)과 주한미군 대한원조처(AFAK)의 원조를 받아 1953년 10월 아동병원을 준공했다. 병원은 3층 건물로 60병상을 갖췄으며, 고아원에 수용 중인 어린이들을 모두 무료로 치료해주었다.
병원 운영이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1957~1958년 마펫 원장의 보고서에 따르면, '(하나님의 축복이 아닌) 인간적인 기준에서 볼 때 선명회의 지원이 계속되지 않는다면 이 사업은 유지될 수 없다. 최근에 선명회는 보조금을 매월 800달러에서 1천달러로 인상했다. 하지만 이 돈은 장기입원 원아 40명을 간호할 수 있는 돈에 불과하다. 지난해 외래환자로 내원한 1만여 명 중 고아원 아이들은 2천350명이나 됐다. 이들을 3천달러의 자선사업비로는 돌봐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동병원을 통한 무료진료는 계속 이어졌다.
◆1950년대 말 외래환자 7만여 명
마펫 원장은 일류 병원을 만들려면 먼저 의사들의 의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병원 사무직원들의 관리능력도 국제적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믿었다. 이때문에 의사들뿐 아니라 행정직 과장들을 미국에 유학시켜 연구하고 실무 수련을 쌓도록 했다.
아울러 의사'간호사'물리치료사는 물론 전기기계'영양'회계'의무기록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선교사를 초빙해 외국에 가지 않더라도 선진 기술 및 기법을 물려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환자들이 꾸준히 늘면서 입원실 증축이 불가피했다. 1957~1958년 동산기독병원의 상황은 마펫 원장이 미국 북장로회에 보낸 보고서를 통해 알 수 있다. '병원에 오는 환자 수도 꾸준히 늘고 있다. 전체 외래환자수는 약 7만2천 명, 실인원은 약 2만7천500명이다. 외과 수술이 1천541건이고, 이 중 대수술이 920건이다. 연간 수술비 전체 예산은 약 22만5천 달러이며, 이 중 18만7천달러는 환자 치료비에서 받는 것이다. (중략) 1인당 평균 입원비용은 하루 3.75달러이다. 이것은 미군 군속이 개인병원에 지불하는 하루 평균 비용이 50달러라는 최근 통계에 비해 볼 때 매우 낮은 수치이다. 일반적으로 수술비는 충수절제술(맹장염 수술) 20달러, 위 절제술 38달러, 담낭절제술 38달러, 절단 수술 17달러, 영아 분만 14달러 정도다.'
◆환자 늘면서 꾸준히 병원 확장 추진해
보고서 이후 10년이 지난 1967년에 병원 환자는 훨씬 더 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1967년 병원 발전 5개년 계획을 세운 뒤 병원 신축 및 현대식 장비 도입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친 마펫 원장은 5개년 계획이 끝나는 1972년 예상을 웃도는 후원금을 모을 수 있었다.
우선 1967년 6월 24일 6층 규모의 신관 입원병동과 11층 규모의 간호학교 및 기숙사 건물, 신관'구관 연결복도, 레크리에이션센터 등을 준공했다. 마펫 원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미국합동보험회사 사장인 클레멘트 스톤(Clement Stone) 씨로부터 50만달러를 기증을 받고 이 밖에 개인적으로 모금한 110만달러를 추가해 신축을 추진했다.
입원 수용능력이 300병상으로 늘어났고, 병원과 간호학교는 한국 최고라는 찬사를 받게 됐다. 6'25 전쟁 후 간호사와 간호학생의 기숙사와 선교사 사택을 미군이 사용하는 바람에 당시 간호사와 간호학생들은 병원과 선교사 사택 중간 공터에 미군용 천막을 얻어 설치해 임시 기숙사로 사용한 적도 있었다.
그런 경험이 있은 뒤 당시로는 초현대식 간호학교와 기숙사가 새로 지어지자 병원 사람들은 새삼 감개무량할 수밖에 없었다. 새 병동에서는 입원환자들이 최신 수세식 화장실 사용법을 몰라서 간호사들이 사용법을 일일이 설명하는 일이 상당히 번거로웠지만 최고급 병원에서 근무한다는 자긍심 덕분에 해낼 수 있었다고 한다.
◆80대에도 건강 유지하며 테니스대회 우승
마펫 원장은 병원 남쪽 끝 사택단지와 본원 사이를 차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기발한 착상의 구름다리를 건설했다. 길이 145m, 폭 4.6m의 콘크리트 다리가 건설돼 사택단지와 본원이 한 구내처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됐다. 대부분 환자와 직원들이 승용차를 타고 이 구름다리를 거쳐 병원으로 오고 가는 현상황을 생각하면 놀라운 선견지명인 셈이다.
1994년 마펫 원장은 46년간의 한국 생활을 마무리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당시 77세였다. 노년 생활은 캘리포니아주 바닷가 작은 마을인 카핀테리아에서 보냈다. 마펫의 어머니가 태어난 곳이고, 부모 묘지가 있는 곳이다.
마펫은 승마와 테니스 회원으로서 여가를 즐기며 건강을 지켰다. 2001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80세 이상 고령자 아마추어 테니스대회 단복식에서 우승했다.
당시 마펫은 "80세 이상의 노인들이 테니스를 치는 일이 흔치 않아서 항상 내 나이보다 젊은 사람들과 치게 됐고, 그들을 따라가려고 애쓰다보니 많은 연습을 해서 실력이 늘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마펫은 2002년 6월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80세 이상 유럽 아마추어 선수권 대회에도 출전해 당당히 우승했다.
이처럼 건강한 정신과 신체를 유지한 덕분에 2010년에는 '계명대 동산의료원 개원 111주년 선교 특강'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올 수 있었다. 당시 93세였다. 마지막까지 한국을 그리워하고 대구 사람을 보고 싶어했던 마펫은 2013년 6월 2일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감수=의료사특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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