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교쟁이 아가씨 앨리샤가 처음 우리 곁에 왔을 때, 침실로 애용하는 자리가 있었다. 바로 오빠가 즐겨 치는 디지털 피아노였다. 피아노 위가 아늑했던 건지, 아니면 피아노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면 우리를 지켜보기 편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늘 피아노 위에 쌓아둔 책 위에 자리를 잡고 있거나 펼쳐놓은 악보 뒤에 납작 엎드려서 잠을 청하곤 했다.
한번은 오빠와 이야기를 하다가 음악을 따라 부르거나 하는 동물들을 본 생각이 나서 "앨리샤도 음악적 재능이 있을지 몰라" 하며 앨리샤를 안고 흰 건반 위에 올려놓아 본 적이 있었는데 자신의 무게 때문에 눌려서 내려앉는 건반의 느낌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지 서둘러 건반 위를 벗어나 다시 책 위로 폴짝 올라가 버렸다. 결국 앨리샤의 피아노 연주는 가끔 오빠가 피아노 칠 때 피아노 위로 뛰어올라 자리를 잡기 위해 지나가면서 둥당거리며 건반을 밟는 것 외에는 들을 수가 없었다. 사실 우리는 '고양이 왈츠'를 떠올리며 건반 위에서 노니는 앨리샤의 모습을 기대했었지만 말이다.
'고양이 왈츠'는 피아노 건반 위를 돌아다니다가 자기 발에 눌린 건반소리에 깜짝 놀란 아기 고양이의 모습을 보고 쇼팽이 작곡한 곡이다. 그래서인지 그 곡을 들으면 빠르게 오르락내리락하는 피아노 선율 속에서 당황한 아기 고양이의 약간 엉성한 발걸음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떠오르곤 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무심코 넘겼거나 그냥 웃고 말았을지도 모르는 고양이의 모습에서 쇼팽은 새로운 악상을 떠올렸고, '강아지 왈츠'와 함께 동물을 음악으로 나타낸 대표적 작품을 세상에 남겼다.
종종 이렇게 고양이는 음악가나 화가의 뮤즈(Muse)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조선의 변상벽 화백이나, 영국의 화가 루이스 웨인(1860~1939)이 고양이를 자신의 뮤즈로 받아들인 대표적 예술가다. 변상벽은 변묘(卞猫), 변괴양(卞怪樣)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고양이 그림을 즐겨 그렸고, 웨인은 자신의 고양이를 그린 그림을 시작으로 평생에 걸쳐 고양이만을 소재로 한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특히나 변상벽의 그림 속 고양이는 지금도 우리 곁에서 흔히 보이는 모습의 고양이를 담고 있는데,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림만 봐도 화가가 고양이를 정말 좋아했음을 느낄 수가 있다. 널리 알려진 그의 작품 '묘작도'를 보면 고양이 특유의 표정과 포즈가 너무나 세세하기에 그 그림을 그린 이가 오랫동안 애정을 가지고 고양이를 보아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모습이 너무 생생하기도 해 당장이라도 동그랗게 뜬 그의 눈을 깜박이거나 그림 안 나무에서 폴짝 뛰어내려 사람에게 다가와서 아웅거리며 다리에 몸을 비빌 것만 같다.
아쉽게도 내겐, 두 마리의 고양이는 있지만 변상벽 화백처럼 섬세한 고양이 그림을 그려낼 능력이나, 쇼팽처럼 타고난 천재성으로 고양이의 모습을 선율로 담아낼 능력은 없다. 대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녀석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포착해 낼 수 있는 카메라는 있다. 그마저도 기억하고픈 모든 걸 사진에 담을 능력은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좋지 못한 솜씨에도 불구하고, 모델이 좋은 탓인지 가끔은 뿌듯할 정도로 그럴듯한 화보 사진이 나오기도 하고, 두고두고 즐거워하며 볼 수 있는 특색 있고 웃긴 장면을 포착하기도 한다. 이렇게 내 휴대폰 사진함엔 고양이 사진이 대부분이고 컴퓨터 안에도 고양이 사진이 한가득인 것을 보면, 그리고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 할 말이 가장 많은 것을 보면, 어쩌면 내게도 고양이가 영감을 가져다주는 뮤즈가 아닌가 싶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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