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차이나 반도의 내륙국가인 라오스는 우리에게 그렇게 친숙한 나라는 아니다. 라오스가 동서남북으로 국경을 접하는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중국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라오인민민주공화국'(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이라는 정식 명칭도 낯설기만 하다. 21일부터 23일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초청으로 공식 방한한 추말리 사야손 대통령은 1995년 한'라오스 재수교 이래 처음 한국 땅을 밟은 라오스 대통령이다.
하지만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 인근의 푸앙 지역에는 한국 이름의 학교가 세 곳이나 있다. '혜원' '프라임' 'Yes Gumi' 등이다. 모두 기증자인 최병식(63) 혜원자원 대표의 뜻에 따른 이름이다. 먼 이국의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해 활발한 기부와 봉사활동을 펴고 있는 최 대표를 17일 라오스 출국에 앞서 만났다.
◆라오스에 학교 3곳 건립 지원
최 대표가 라오스를 처음 방문한 것은 2010년이었다. 그가 다니고 있는 구미 금오산 법성사의 무애 주지 스님과 동행한 자리였다. 법성사는 봉사단체 '법운사회복지회'를 설립, 심장병'백혈병'난치병 어린이 수술비 지원 등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건네고 있으며 2006년부터는 라오스 교육'의료 지원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 대표에게 라오스 농촌의 현실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1893년부터 프랑스의 지배를 받다가 1949년 독립했지만 1975년 공산혁명이 일어나면서 개발이 정체된 터라 한국의 수십 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현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참 가관이었습니다.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이지만 밤에는 소 키우는 축사로 바뀌거든요. 건물이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허름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데 인근에는 일본인이 지어줬다는 학교가 있었습니다. 그걸 보니 은근히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현지 정부 관계자들에게 일본 학교보다 더 좋은 학교를 세워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최 대표는 이후 사재 수억원을 들여 현지에 학교 3곳을 짓고 보건소 건물을 고쳐줬다. 처음에는 학교 한 곳만 건립을 지원할 생각이었지만 이어지는 후원 요청을 차마 거절하기 힘들어서였다. 물론, 매년 장학금까지 꼬박꼬박 전달하고 있다.
두 번째 학교 이름인 '프라임'은 그가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구미 '프라임 오케스트라'에서 따왔다. 구미의 자생적 오케스트라인 이곳은 교도소나 양로원, 구미 외곽지역의 초등학교 등을 찾아가 음악회를 열어주고 있다. 또 다른 학교의 이름인 'Yes Gumi'는 구미시가 2007년부터 쓰고 있는 도시 브랜드 슬로건 그대로이다. 그에게 '제2의 고향'인 구미의 '기업하기 좋은, 긍정적 도시'라는 비전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학교를 지어주기 전에는 비엔티안에서 자동차로 7시간이나 걸려 푸앙지역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도로 사정이 워낙 열악해서였지요. 그런데 저희가 학교를 지어줘서인지는 몰라도 요즘은 정부가 포장을 새로 해줘 3시간이면 갑니다.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공부에 대한 열망만큼은 가득한 라오스 어린이들에게도 좋은 일이겠지요. 회사에 다니는 제 아들 녀석도 학생들에게 선물을 전해달라며 며칠 전 제게 봉투 하나를 주더군요. 허허허."
◆역경과 고난 딛고 베푸는 삶
최 대표가 2007년 설립한 혜원자원은 구미시 구포동에 있다. 재활용 가능한 고철, 파지 등을 모아서 재가공하는 업체에 판매하는 회사다. 창립 첫해에는 매출이 5억원 정도였지만 6년째인 올해는 30억원이 훌쩍 넘을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파지 등을 조금씩 가지고 오는 사람들에게도 항상 후하게 값을 챙겨준다고 정평이 나 있다.
"모두 주위 분들이 도와주신 덕택입니다. 지금 회사도 그 이전에 물류운송사업을 하면서 알게 된 제지회사 사장님이 아이디어를 주셔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고물상'을 한 번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 사장님이 창업 자금까지 대주면서 폐지를 모아서 납품해 보라고까지 하셔서 전혀 모르던 분야에 무작정 뛰어든 것이죠. 제가 덩치는 작아도 겁이 없는 편입니다. 이 길이 맞다고 생각하면 앞뒤 안 가리고 돌진하는 '맨땅에 헤딩' 스타일이라고나 할까요?"
최 대표는 대구 중구 서성로가 고향이다. 구미에는 1978년 '밍크 담요'를 만들던 회사에 취직하면서 왔다. 외가 친척이 운영하던 직물공장에 다닌 게 인연이 됐다. 이후 생산직 근로자로 10년 가까이 일하다 중고 화물차를 구입, 섬유회사들의 물류를 대행하는 사업을 시작했고 구미 한 고등학교 학생들의 통학 위탁사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업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동안 사업을 하면서 대략 세 번의 큰 위기를 겪었다는 게 그의 회고다. 외환위기 때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할 상황까지 내몰리기도 했다는 말을 겨우 내뱉은 뒤에는 잠시 인터뷰가 중단됐다. 붉어진 그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사업이란 게 정말 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어렵습니다. 저도 기반을 잡기까지 참 고생을 많이 했고요. 외환위기는 구미에 있는 한 대학 앞에서 원룸주택사업을 벌이던 중 터졌습니다. 하루는 '고의 부도를 내서 몇 푼이라도 건져라'는 주변의 말에 솔깃해져서 공사가 중단된 현장을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가봤죠. 그런데 그곳에서는 인부들이 안주 하나 없이 '깡소주'를 마시고 있더군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결코 부도를 내어선 안 되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은 최 대표에게도 딱 들어맞았다. 원룸주택에 설치할 보일러를 시공하는 회사의 사장이 흔쾌히 도움을 자청했다. '착실한 사람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니 너무 안타깝다'며 공사비를 반만 받고 나머지는 나중에 형편이 좋아지면 받겠다는 제안이었다.
그는 갖고 있던 전 재산을 털어 넣고도 모자라 지인들의 도움으로 겨우 공사를 마무리한 뒤 '눈물의 잔치'를 열었다. 공사업자들을 다 불러서 돈을 주는 바람에 한 푼도 남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슬하의 아들, 딸이 명문대에 합격하고도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탓도 아니었다. 그를 믿고 도와준 사람들이 고마웠기 때문이다.
"제가 2003년부터 각종 봉사활동을 시작했는데 그게 다 씨앗이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구미에는 '최병식이가 뭘 한다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적극 돕겠다'는 분들이 좀 됩니다. 무엇을 바라고 봉사활동을 해온 것은 아니지만요. 사업한답시고 처자식을 고생시킨 것 말고는 부끄러울 게 없다고 감히 자부합니다."
◆명함에 찍힌 직함 13개
최 대표의 명함 뒷면에는 작은 글씨로 빽빽이 새겨진 각종 직함이 13개나 된다. 대부분 그가 맡고 있는 봉사단체의 회장이라는 '감투'다. 구미사랑산악회, 프라임 오케스트라 후원회, 구미 중앙라이온스, 구미발전동지회(부회장) 등이다. 한국정수기념사업회 총괄본부장, 사단법인 대한민국 경우회 자문위원, 경운대학교 새마을지도자대학 11기 회장 등의 직함도 눈에 띈다.
"취미에서 시작된 '인연'도 있습니다. 사단법인 대한산악연맹 경북지부 상임 부회장 등이 그런 경우죠, 등산을 본격적으로 한 지는 20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심장이 좋지 않아 무리하지는 않고요. 2008년 구미시 승격 30주년 기념으로 이뤄졌던 히말라야 초오유(해발 8,201m) 원정 때도 추진위원장을 맡았는데 함께 가지 못해서 안타까웠지요."
그는 16일 구미지역 13개 등산단체가 모여 결성한 구미사랑등산연합회에도 주도적으로 참여, 초대 회장에 취임했다. 공단에서 일하는 타향 출신 사람들이 많은 구미의 특성을 고려해 근로자들의 메마른 정서를 달래주고 봉사도 조직적으로 해보자는 취지다.
10여 년째 다양한 분야에서 봉사활동을 펴온 그가 요즘 가장 애정을 쏟고 있는 일은 '금당 무료 요양원' 건립이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법성사 법운사회복지회와 공동으로 펴고 있는 노인 복지사업이다. 현재 구미시와 장소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내년 착공을 목표로 하는 요양원은 홀몸노인 20여 명의 거처로 활용된다. 전체 사업비는 10억원 정도로 예상하고 있으며 신도들을 중심으로 2억5천만원 정도를 모금했다.
"제가 평생 꿈꿔왔던 일이라서 저의 모든 능력을 쏟아부을 작정입니다. 외환위기로 실패했던 원룸주택 건축 사업 때도 1개 동은 오갈 곳 없는 어르신들을 위해 운영할 예정이었거든요. 세상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온 제가 더 늙기 전에 꼭 해놓아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각계각층에서도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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