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2014 수능 단상(斷想)

지난달 29일 본사 주최 2014학년도 대입 정시 모집 전략 설명회가 대구의 한 여고 대강당에서 열렸다. 설명회장은 1천여 명의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차가운 날씨에 총총히 설명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어느 어머니와 고3 딸의 모습을 보면서, 대강당 바닥에 배치기준표를 죽 펴 놓고 퍼질러 앉은 한 아버지를 보면서 또 한 번의 수능이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싶었다. 강사의 말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귀 기울이는 그들의 모습들을 보며 저들의 지금 기분은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지난달 27일 수험생들에게 배포됐다. 평소보다 점수가 잘 나왔든, 실망스럽게 나왔든 수험생들은 이제 자신의 점수를 토대로 대입 지원 전략을 짜야 한다. 내년에는 전국의 의대 정원이 1천여 명 늘어나고, 정시 비중도 높아진다고 하니 재수를 불사하고 소신 지원하는 수험생들이 많을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전 세계적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그 교육열의 한가운데에 '수능' 이 있다. 12년 공부의 성패가 수능에서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수능이 주는 중압감은 클 수밖에 없다. 수능이 쉽게 출제되면 변별력이 떨어져서, 어렵게 출제되면 점수가 내려가서 걱정이다. 특히 이번 수능에선 영어 A'B형 선택에 따른 유불리 문제까지 생겼으니 중위권 수험생 경우 머리가 더욱 복잡하게 됐다. '영역별 반영 비율을 분석해 나에게 유리한 대학에 지원한다'는 언뜻 쉬워 보이는 정시 전략을 얻기 위해 수십만원을 입시 컨설팅 업체에 내기도 한다.

수년째 교육 담당 기자로서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저런 고생 끝에 대학에 들어온 청년들의 내일이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전공 불문하고 점수에 맞춰 대학과 전공을 선택한 많은 학생이 또 대학과 전공을 불문하고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현실 앞에서 수능은 '장밋빛 미래'의 보증수표가 될 수 없다.

요즘 학생들의 진로는 더 이상 단선적이지 않다. '일반계고 졸업→4년제 대학 입학'이라는 등식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일반계고를 나와서 전문대학에 입학하기도 하고,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전문대에 들어가기도 한다.

일례로 대구보건대학교는 이번 2014학년도 수시'정시모집 대학졸업자 전형에서 총 500여 명이 지원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보건 계열 특성대학인 이곳에선 이른바 4년제 대학을 나와 입학하는 '학력 유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대학 치기공과에 다니는 A씨는 지역 국립대 전자공학부를 중퇴하고 학력 유턴을 한 경우다. 자신의 소질과 적성에 맞춰 진로를 바꾼 그는 교내 모의취업경진대회와 전국 치기공대학학생 석고조각 경연대회에서 연거푸 수상하며 즐겁게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2011년 이 대학 물리치료과를 졸업한 B씨는 대졸 직장인에서 병원 물리치료사로 변신한 경우다. 그는 성실한 학창생활을 하며 학과 수석졸업을 하고, 2010년 물리치료사 국가고시에서 3천451명 응시생 중 전국 수석을 차지했다.

수능 원서접수 시작도 전에 학력 유턴 운운하며 수험생들을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자신의 적성이나 소질보다는 점수에 맞춰 전공과 대학을 선택했다가 졸업 때 후회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입시 전략도 중요하고, 잣대도 잘 살펴야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선택하려는 전공이 나와 얼마나 잘 부합하는가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