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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학의 시와 함께] 12월-김이듬(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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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라 좋다

거리에 서서

초점을 잃어가는 사물들과

각자의 외투 속으로 응집한 채 흔들려 가는 사람들

목 없는 얼굴을 바라보는 게 좋다

너를 기다리는 게 좋다

오늘의 결심과 망신은 다 끝내지 못할 것이다

미완성으로 끝내는 것이다

포기를 향해 달려가는 나의 재능이 좋다

나무들은 최선을 다해 헐벗었고

새 떼가 죽을힘껏 퍼덕거리며 날아가는 반대로

봄이 아니라 겨울이라 좋다

신년이 아니고 연말, 흥청망청

처음이 아니라서 좋다

이제 곧 육신을 볼 수 없겠지

움푹 파인 눈의 애인아 창백한 내 사랑아

일어나라 내 방으로 가자

그냥 여기서 고인 물을 마시겠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널 건드려도 괜찮지?

숨넘어가겠니? 영혼아,

넌 내게 뭘 줄 수 있었니?

-시집 『말할 수 없는 애인』(문학과지성사, 2011)

태생이 자유로운 영혼은 몸과 마음을 비끄러매 둘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닌다. 겉보기엔 분방해 보이지만 속내는 어딘가에 묶이고 싶은 것이다. 결핍은 그쪽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래로 정돈된 영혼은 일탈에 대한 갈망이 크다. 겉으로는 틀에 박혔지만 속내로는 무한한 자유를 갈망한다. 출구가 그쪽이기 때문이다.

두 부류는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기차다. 교차하는 중간 지점에는 시가 없다. 발과 꿈의 거리가 멀수록 시의 파격과 낯섦의 정도가 도출하는 울림이 크다. 최선을 다해 꿈을 멀리 보낼수록, 달려가 거세게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울컥울컥 선혈처럼 시가 피어난다.

대체로 사람들은 태생에 따라 생래에 따라 디딘 발, 뿌리 뻗은 곳에서 산다. 그러나 시인이란 존재는 발과 꿈의 이격 정도가 멀고, 호기심 또한 만만찮은 사람들이다. 시는 그런 무모한 여정의 종점을 향해가는 불쌍한 기록이다. 언젠가는 다시 발로 돌아갈, 그러나 (시를 버리지 않는 한) 기약할 수도 없는.

시인 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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