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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의 동양고전 이야기] 운명론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숙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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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충(王充)의 논형(論衡)'(2)

왕충은 합리주의자로 당시 한나라에 유행했던 참위설이나 천인상관설(천인감응설)을 미신적인 것으로 비판했다고 앞에서 말했다. 이러한 '천인(天人) 구분론'은 유가의 순자도 이미 했으나, 당시 대제국 한나라의 사회적 기풍을 비판한 것은 사상사적으로 의의가 있다. 그의 이러한 사고방식의 특색과 함께 참고할 만한 것은 그의 '숙명론'이다. 숙명은 운명보다 더 깊이 인간에 운명적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는 일종의 '성명론'인데, '장자'의 '외편'잡편'에서 이미 '성명'으로 나왔다. 그 후 일반적으로 이 말이 널리 쓰였다. '성명'(性命)의 '성'은 '천성'(天性), 즉 인간에 내재한 천으로 인간의 본성, 본질을 말하고, '명'은 '천명'(天命)으로 인간의 밖에서 인간을 지배하는 운명을 가리킨다. 그 후 이 성명에서 '생명'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이 '성'과 '명'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자고로 인과관계로 보아 '성'에서 나타난 인간행위의 선악이 원인이 되어 길흉의 천명이 된다고 했다. '천인관계설'에서 인간의 행위가 하늘의 상서로 나타난다는 생각과 같은 것이다. '천인 단절'을 주장하는 왕충은 이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선악은 인간 본성에서 나타나는 것이고, 화복(禍福)은 하늘에서 나오는 것이라 보았다. 이 선악과 화복은 전연 다른 관계이다. 그런데 우리는 '선인선과' '악인악과'라고 여긴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선인이 불행할 수 있고, 악인이 복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왕충은 '선인선과, 악인악과'는 필연적으로 언제나 그런 것이 아니고, '우연'이라고 한다. 사마천이 일찍이 '선인이 왜 불행한가'라면서, 유교의 의무윤리에 회의를 표시한 바 있다. 왕충에게는 선인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도 그렇다는 것이다. 세상은 모순에 가득 차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왕충은 사후세계를 믿지 않았다. 그는 "그동안 죽은 사람의 수를 보면 엄청나니 만약 사후에 귀신이 있다면, 살아있는 사람이 길을 가다가 자주 부딪칠 만한데, 그런 말 들어보지 못했다"라고 한다. 왕충 역시 유교에 숨어 있던 한계와 비극성을 표출한 것이다.

오늘날 과학의 발달로 도덕과 행복을 막연히 갖다 붙이지는 않는다. 또 인간을 '영혼-육체'의 갈등관계로 단순화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모든 철학과 종교는 인간의 의지, 노력, 희망을 말한다. 과연 맞는 말일까? 엄밀히 말하면 인간의 의지와 노력도 이미 유전인자(DNA)에 프로그래밍(계획)되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되면 운명론에서 한 걸음 나아가 '숙명론'이 된다. 왕충의 논의를 밀고 나가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철학적 화두다.

이동희 계명대 윤리학과 교수 dhl333@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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