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기말고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시험범위에 백석의 시 '수라'가 있었다. 고3 수능 대비 문제집에 많이 나오는 시를 중학교 1학년에서는 어떻게 배우나 싶어서 시 내용에 대해 아이에게 물어 보았다. 아이는 "응, 그거? 일제 치하에서 우리 민족이 처해 있는 비참한 현실을 이야기한 시야"라고 답을 했다. 나는 뭘 보고 일제 치하라고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그냥 수업 시간에 그렇게 배웠다는 것이다.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언제인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시작하는 시에서 일제 치하를 연상할 수 있는 부분이 어디 있을까? 눈을 씻고 보아도 이 시에서 곧바로 일제 치하를 연상할 수 있는 단서는 전혀 없다. 시를 읽을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오로지 시 자체만 읽고 그에 대해서 해석을 하는 것인데, 이를 '내재적 읽기'라고 한다. 내재적 읽기로 이 시를 읽으면 아무 생각 없이 거미를 버렸다가 거미를 통해 가족을 생각하는 화자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 시에서 재미있는 것은 화자가 거미를 불쌍하게 생각하면서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큰 거미를 찬 밖으로 던져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자기는 서러워한다. 거미는 찬 밖에 있지만 가족과 함께 있게 된 것이고, 자기는 따뜻한 방안에 있지만 거미보다 못한 처지라고 생각해서 그럴 것이다. 화자는 가족과 떨어져 있는 자신의 서러움을 거미를 통해 말한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내재적 읽기가 바탕이 된 상태에서 좀 더 알고 싶으면 시인 백석과 그의 시 경향, 작품이 발표된 때의 시대적 상황 등에 대해서 조사를 해 볼 수도 있다. 그렇게 조사한 내용들과의 연결고리를 이용해서 읽는 방법을 '외재적 읽기'라고 한다. 외재적으로 읽는 방법은 부수적이고 참고 사항 정도로 시를 읽는 방법이지만 학교에서는 시험에 내기에 편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더 집중을 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시 해설서를 주지 않으면 시를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시를 그렇게 읽으니까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그저 수수께끼 같은 어려운 말로 들리는 것이다.
대학에 있는 친구나 선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국문과나 국어교육과 면접에서 꼭 하는 것 중 하나가 시 암송하기인데, 이때 우리나라 학생들은 '서시'파와 '진달래꽃'파로 나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좀 더 길면서 외울 수 있는 다른 시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시를 외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시에 대해서 관심과 애정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어렵고, 괴롭고, 재미없는 것에 관심과 애정이 생기지는 않는다. 시는 즐겨야 제 맛이다.
능인고 교사 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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