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민주주의'로 불리는 지방자치가 모양을 갖춘 지 19년째다. 민선 6기 지방자치단체장이 출범하는 내년이면 우리의 지방자치가 성년이 된다. 초기의 시행착오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지만, 뿌리뽑아야 할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있다. 정당공천 허용 문제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했다. 내년 선거는 지방자치제도의 방향과 운명이 결정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란 관측이다.
◆지역 특성 살리고 관공서 문턱은 낮추고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자취를 감췄던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는 1991년 기초'광역 선거에서 1995년 자치단체장 선거를 시행하면서 서서히 '생활 자치'로 자리 잡아 갔다. 본격적으로 개막한 지방자치 시대의 가장 큰 성과로 '열린 행정'이 꼽힌다. 주민들의 목소리는 4년마다 치러지는 선거를 통해 반영됐다. 각 지자체장과 지방의원은 '심판'에서 이기려고 지역 맞춤형 홍보와 정책을 쏟아냈다. 공무원 중심의 공공서비스에도 변화가 생겼다. 현장 중심, 쌍방향 행정이 강화되면서 민원 처리 속도도 빨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역마다 차별화한 축제는 지역 고유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함으로써 특색있는 지역 문화 발전과 관광 산업 육성을 통한 지역 경제에 활성화에도 이바지하기도 했다. 강원 화천의 산천어축제, 경기 이천의 도자기축제 등은 대표적인 지자체 축제로 자리 매김한 것이 그 예이다. 지역 대표 축제인 청도 소싸움 경기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한국 10대 지역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여기에 2007년 도입된 '주민소환제'는 지방자치를 한 단계 끌어올린 계기가 됐다. 경기 하남시, 제주도, 경기 과천시, 강원 삼척시, 전남 구례군 등에선 주민소환 투표가 이뤄졌다. 모두 투표율 미달로 피소환된 지자체장의 직위가 상실되진 않았지만,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주민의 직접적인 견제 기능으로 지방자치의 격을 한층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예산낭비, 부정'비리는 여전한 걸림돌
성과의 이면에 부작용도 따랐다. 선출직 단체장과 의원들이 '업적홍보용'으로 우후죽순 시작되는 사업은 전시행정'선심행정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지적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도 제기됐다. 윤재옥 새누리당 의원(대구 달서을)은 "725억원의 사업비가 들어간 육상진흥센터는 국제기준인 보조경기장을 갖추지 못해 국제실내육상대회를 유치할 수 없다"며 "5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한 대구 사격장 역시 전자표적장치가 없어 국제대회를 유치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850억원을 투입한 인천 월미은하레일은 부실시공으로 수년째 개통조차 하지 못하고 있고, 운영'인건비가 연간 295억원에 달하지만, 수입은 10분의 1밖에 안 되는 경기 용인 경전철도 '혈세 먹는 하마'의 대표적인 예이다.
학연'지연에 따른 정실 인사도 고질적인 병폐로 꼽힌다. 정년퇴직을 앞둔 지자체 고위 공무원이 산하 기관으로 가는 '일자리 창출'의 사례는 다반사다. 꼼수도 있다. 최근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대구 달서병)도 "지난 4년간 단 한 차례의 회의도 열지 않은 대구경북의 위원회가 전체의 30%를 웃돈다"며 "개점휴업 상태인 위원회에 예산이 들어가고 위원장과 위원들이 자치단체장의 보은 인사로 채워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각종 비리로 중도에 낙마하는 지자체장도 있었다. 민선 1∼5기 군수 4명이 옷을 벗은 전북 임실군, 역대 민선시장 3명이 구속된 경기 성남시는 그야말로 '지자체장의 무덤'이다. 도덕성을 잃은 지자체장의 부정'비리로 인한 선거 비용도 무시하기 어렵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995년부터 올 4월까지 광역'기초자치단체장 재보선이 141곳에서 치러졌다고 밝혔다.
◆책임 행정, 자치사무'재정분담 비율 높여야
성년을 앞두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향토 체제'를 굳건히 한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인구 1만∼2만 명당 지자체 1개꼴이지만, 우리는 광역 17곳, 기초 227곳 등 244개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살림을 도맡아 '자치행정' 구현에 어려움이 따른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지자체의 발전 가능성은 희망적이다. 행정 참여 등 주민들의 의식이 날로 성숙해지고 있는데다 자기 계발에 나선 공무원들도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책임 행정을 위해선 현재 8대 2 수준인 중앙과 지방의 사무'재정 분담률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자치단체장에 편중된 권력을 견제하도록 기초선거에서 후보자 검증을 강화하고 의회를 재정비해 감사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지현기자 everyda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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