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사자성어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는 10년 넘게 감옥에 갇힌 죄수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몇 년이 지나자 다 한 번 이상 들어 본 내용이 되어 버렸다. 이야기하고 있는 중간에 이미 끝을 알고 있으니 듣는 사람도 재미가 없고,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들의 반응이 좋지 않으니 신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낸 묘안은 이야기에 번호를 붙이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존의 첫사랑 이야기는 1번, 조지가 감옥에 들어오게 된 사연은 2번, 이런 식으로 이때까지 나온 이야기들에 번호를 매겼다.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누구 한 명이 "21번!" 이러면 모두들 웃기는 내용이었던 21번 이야기를 떠올리고 박장대소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말이라는 것이 사람들 간의 약속만 있다면 얼마든지 압축해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과 유사한 원리가 작동하는 우리말이 바로 사자성어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말하면 우리 머릿속에서는 변방 노인에 얽힌 이야기들과 교훈을 함께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자성어는 한자를 모르거나 그 내용을 미리 학습하지 않으면 의사소통에 장애를 일으킨다. 국어학자들이 일부 계층에서만 쓰는 은어나 인터넷 신조어, 그리고 방언을 쓰지 말라고 하고 표준어를 바른말 고운말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다. 그렇지만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 은어는 쓰지 말아야 할 대상이고, 사자성어는 적극적으로 교육을 해야 하는 대상이다. 은어는 교육을 할 가치가 없는 것이지만 사자성어는 우리의 문화와 삶이 녹아 있는, 꼭 알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말이 되면 교수회에서는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지금까지 교수회에서 발표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쉬운 것이 없다. 그런 아쉬움에서 나름 쉬운 말로 된 올해의 사자성어 후보를 만들어 보았다.

①대동소이(大同小異): 지난 5년이나 올해나 크게 다르지는 않음.

②형설지공(螢雪之功): (극심한 전력난으로) 반딧불과 눈에 비추어보면서 공부해야 하는 상황, 혹은 그렇게 공부하면서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 감을 잃은 상황.

③쾌도난마(快刀亂麻): 얽힌 일들을 명쾌하게 처리하는 것을 이르는 데 더 많이 사용되지만 권력자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강력한 힘으로 잘라내는 일을 이르는 데도 사용됨.

④오비이락(烏飛梨落): 정치적으로 큰 이슈가 있을 때마다 연예인들의 열애설, 도박 사건, 성매매 사건 등이 터져 나오는 상황, 혹은 우연이 겹치면 필연으로 믿게 되는 상황.

사자성어라는 것이 원래 압축적인 것이다 보니 해석은 하나로 고정된 것은 아니다. 그럴 때는 고민할 것 없이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해석하면 된다.

능인고 교사 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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