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일모도원 도행역시

초나라 사람이던 오자서의 아버지 오사는 초 평왕의 태자 건의 스승이었다. 그러나 태자비 책정 문제로 태자와 사이가 틀어진 평왕은 태자를 폐위하고 스승이던 오사와 그의 장남 오상을 살해했다. 홀로된 자서는 복수를 맹세하며 태자와 함께 정나라로 탈출해 반역을 도모했다. 하지만 이 역시 실패하고 태자 건은 죽임을 당했다. 자서는 다시 오나라로 도망쳐 복수의 칼을 갈았다.

BC 506년. 오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든 오자서는 병사를 일으켜 초나라의 수도를 함락시켰다. 그러나 평왕은 이미 죽은 뒤였다. 오자서는 죽은 평왕의 묘를 파헤쳐 시체를 꺼냈다. 그리고 구리 채찍으로 300번을 내리쳤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친구 신포서가 편지를 보내 물었다. "자네는 전에 평왕의 신하로 그를 섬긴 적이 있는데 지금은 이미 죽은 사람에게 이러한 치욕을 주니 천도에 어긋난 일이 아니겠는가?" 너무 가혹하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오자서는 이렇게 답했다. "이미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머니 도리에 어긋나는 줄 알지만 순리에 거스르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吾日暮途遠 吾故倒行而逆施之) 여기서 일모도원(日暮途遠'해야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없음)과 도행역시(倒行逆施'순리를 거슬러 행동함)란 고사성어가 나왔다. 오자서는 원한과 복수심으로 초와 오를 들었다 놨다 했다.

교수신문이 이 중 도행역시를 '2013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했다. "박근혜정부가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인사와 정책 등의 분야에서 퇴행적으로 후퇴하고 있는 점을 비판한 것"이라고 선정 이유를 들었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육영수 중앙대 교수는 "지금 우리의 시대 풍경이 프랑스 혁명 이후의 왕정 복고기와 어느 정도 닮은꼴"이라며 박근혜정부의 초반 행보를 '유신 체제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려는 행보에 비유했다. 민주주의 후퇴, 공안 통치, 양극화 심화를 주장하며 도행역시를 거론했다. 교수신문은 지난 1992년 전국사립대교수협의회 연합회, 국'공립대교수협의회,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가 모여 창간했다.

도행역시가 올 한 해를 특징짓는 사자성어로 합당한가. 이 말의 유래에선 섬뜩함이 묻어난다. 느슨해진 안보, 더디기만 한 경기 회복, 과다한 공기업 부채, 복지 안배 등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일은 태산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일모도원이 낫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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