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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서각의 시와 함께] 염소의 저녁-안도현(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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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말뚝에 매어놓은 염소를 모시러 간다

햇빛이 염소 꼬랑지에 매달려

짧아지는 저녁,

제 뿔로 하루종일 들이받아서

하늘이 붉게 멍든 거라고

염소는 앞다리에 한번 더 힘을 준다

그러자 등 굽은 할머니 아랫배 쪽에

어둠의 주름살이 깊어진다

할머니가 잡고 있는 따뜻한 줄이 식기 전에

뿔 없는 할머니를 모시고 어서 집으로 가겠다고

염소는 생각한다

- 시집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창비, 2004

염소도 당나귀와 함께 시에 자주 호출되는 소재다. 울음소리는 아기인데 수염이 달려 있어 할아버지 같기도 하다. 그 부조화가 오히려 친근감을 주는가 보다. 저물녘 뒷산에 매어놓았던 염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정경이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시인은 평범한 일상을 고급한 예술로 바꾸어놓았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는 염소 한 마리와 외롭게 산다. 염소가 아마 유일한 가족인지도 모르겠다. 수염이 있으니 영감 대신인지도 모르겠다. 울음소리가 아기 같으니 아들인지도 모르겠다. 염소는 할머니가 빨리 자기를 데리러 오지 않아서 뿔로 하늘을 들이받았노라고 응석을 부리는 철부지이기도 하고 할머니에게 뿔이 없음을 애석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염소와 둘이 사시는 할머니의 삶은 어려운 농촌 현실을 말해준다. 젊은이가 없어 아이 울음이 들리지 않는 것이 우리 농촌의 현실이다. 그러나 마냥 절망적이지는 않다. 이 시의 핵심은 염소 고삐를 '따뜻한 줄'이라 한 데 있다. 줄은 할머니와 염소를 연결해 주는 마음의 통로다. 둘의 관계는 따뜻한 줄로 이어져 있다. 올해는 우리 이웃과의 관계도 이렇게 따뜻했으면 좋겠다. 시인 kweon51@chol.com

*2014년 시와 함께 코너는 권서각 시인과 함께 합니다.

권서각 시인은 영주 출신으로 대구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벌판에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영주고에서 국어교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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