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 인생의예술] 임주섭 영남대학교 음악대학장

오선지에 옮긴 '자연의 선율'

1960, 70년대 동해안 바닷가 마을. 8살 까까머리 어린 소년은 영덕 시골에서 동네 주민들의 농악놀이를 구경하며 자랐다. 간혹 시장에 악극단이 출현하기라도 하면 정신없이 뛰어나가 이를 구경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초등학교 앞을 지나가는 상엿소리도 소년에게는 귀를 사로잡는 멜로디였다. 그 소리들을 들으면서 소년은 '낯선' 꿈을 키워나갔다. 어느 아이들이라면 "나도 저런 소리꾼이 되어야지"라고 생각했을 법하지만, 소년은 특이하게도 "언젠가는 저 소리들을 소재로 나만의 곡을 써보겠다"는 당돌하고도 다부진 포부를 키웠다. 임주섭(53'작곡과 교수) 영남대학교 음악대학장의 이야기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들여온 피아노는 온 영덕군을 통틀어 단 한 대뿐인 진귀한 물건이었다. 교과서에서 그림으로 보기만 했던 피아노를 처음 접한 소년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소년은 담임선생님이 창단한 고적대에서 피리와 큰북을 연주하며 선율감과 리듬감을 익혔다. 그리고 이런 조기교육(?)의 힘이었을까. 중학생 시절, 당시 시대를 풍미했던 KBS '우리들의 새 노래'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작곡한 곡이 소개되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대학생 시절이던 1984년에는 동아콩쿨에 입상하며 병역면제 혜택도 받았고, 1991년에는 일본 고베 국제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하며 영남대 최연소 교수 자리를 차지했다.

임주섭 학장은 "지금도 내 작곡의 바탕이 되는 것은 어릴 적 들었던 국악의 선율과, 바닷가에서 접했던 아름다운 풍광들"이라며 "음악적 혜택을 많이 받을 수는 없는 시골이었지만, 누구보다 자연이 주는 판타지를 가득 채울 수 있었던 유년시절을 보낸 덕택"이라고 했다.

임 학장은 독일 데트몰트 음대에서 현대음악 작곡을 전공했다. 워낙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성격이 강한 장르이다 보니 사람들에게는 참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음악이 바로 현대음악이다. 하지만 임 교수가 작곡한 음악에는 항상 국악의 선율과 자연이 주는 인상들이 가득 녹아있다. 그의 작곡한 관현악을 위한 '동해 일출' 역시 고향에서 수없이 봤던 동해의 장엄한 해 뜨는 장면을 인상적으로 표현한 곡이다. 또 국악에 대한 관심이 많다 보니 임 학장은 "표정만방지곡과 수제천 등을 즐겨 들으며 그 선율과 느낌을 다양하게 활용하려 노력한다. 그 외에도 동양적인 5음계를 사용한 드보르자크의 현악 4중주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임 학장은 "21세기, 대중을 외면한 예술은 존재하기 어렵다 보니 내가 쓰는 현대음악은 역시 사람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다가가길 바란다"며 "이 때문에 특정 장르만을 고집하지 않고 오페라나 뮤지컬에서부터 동요와 어린이 합창곡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작곡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중에서 그가 특히 애정을 두는 것은 시조와 만남 시리즈. 우리나라 평시조를 차용해 곡을 쓴 시조 시리즈는 벌써 8번째이고, 다양한 악기와 주법의 만남에 중점을 둔 만남 시리즈 역시 7번째 계속하고 있다.

임 학장은 "작곡가로서 가장 큰 포부가 있다면 바로 오페라를 쓰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껏 오페라 '향랑'과, 오페라 '중계사'를 작곡했다. 그는 "내 음악과 예술세계만을 고집스레 표현하기보다는 사람들이 감명을 받고 눈물을 흘릴 수 있고, 그래서 오래도록 다시 다듬어지고 재공연될 수 있는 오페라 작품 하나를 남기는 것이 죽는 날까지 내가 계속 도전해야 할 목표"라고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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