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새로운 집으로

15년 전 이야기다. 당시 오빠는 뉴질랜드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있었는데 집에 회색 알록이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고 했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오빠는 그 당시까진 고양이를 집 안에서 키우는 것에 대해 상상도 못했던 내게, 몇 번이나 그 고양이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 녀석은 늘 1층에서 2층까지 점프해 올라와서는 오빠가 지내는 2층 방 창문을 통해 다시 집안으로 들어오곤 하는 활달하고 장난이 심한 녀석이었다. 체셔나 앨리샤처럼 낯선 사람이 왔다고 무서워하고 숨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방에 오빠가 침입해 왔다고 생각했는지 틈만 나면 오빠가 머물던 방에 와서 버티곤 했었다고 했다.

그맘때쯤엔 지금처럼 반려묘를 키우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머나먼 이국땅에서 -그것도 무려 마당엔 잔디가 깔려 있고 아파트가 아닌 영화나 TV에서나 보던 2층집에서- 고양이와 강아지, 새가 식구처럼 함께 지낸다는 오빠의 이야기는 정말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뇌리 속에 담아 둔 채 자랐기 때문일까, 필자가 지금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는 건 아마도 그 이야기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사실, 한국의 도시 숲에서 동물들과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힘들다. 체셔를 처음 데려왔을 때도 내가 살던 곳은 좁디좁은 원룸이었다. 그나마 그곳엔 원룸치고 그 나름 넓은 베란다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마저 없었다면 난 고양이를 데려올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처음에 원룸에 살 때나 잠시나마 낮은 층에 살 때엔 체셔가 가로수에 앉은 새나,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기에 창틀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것을 좋아하곤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체셔와 앨리샤를 데리고 살았던 아파트나 오피스텔들의 경우에는 대부분 주변 건물들과, 또는 그 건물들조차 잘 보이지 않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희뿌연 도시의 전경을 가진 곳이 우리의 거주지였다. 이렇게 밋밋한 풍경만이 내다보이는 집들에선 무언가 삶의 활력소가 없어진 탓일까, 체셔의 삶이 예전보다 무료해 보였기에 내심 안쓰러웠다.

그러던 지난 주말, 우리는 집을 옮겼다. 바로 뒤엔 나지막한 산이 붙어 있고, 앞에는 수확을 끝낸 논과 밭과 한적한 마을 전경이 펼쳐진, 그야말로 고즈넉한 우리나라의 시골 풍경이 있는 곳으로 말이다. 이번 집은 오빠가 이야기해 주던 그곳(뉴질랜드)의 전경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아파트와 달리 아래층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뛸 수 있는 거실이 있고, 녀석들이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는 다락도 있는 곳이다. 게다가 온 집안에선 박하사탕처럼 달달하고 상큼한 나무향이 풍긴다. 그리고 집 안에 계단이 있는 곳에서 산 적이 없었기에 녀석들이 잘 오르내릴 수 있을까 걱정했던 나와 달리 앨리샤는 첫날부터 토끼처럼 계단을 껑충껑충 뛰어다녔다. 처음엔 조심스럽던 체셔도 몇 번 왔다 갔다 하더니 금방 익숙해졌다. 그리고는 이틀 만에 두 녀석은 아예 다락방을 점령했다.

오늘 아침엔 다락방 창문을 열어줬더니 녀석들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흥분했다. 바로 앞 나무에 큼지막한 산새 두 마리가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창틀에 딱 붙어 앉아있는 녀석들 덕분에 나는 새해 첫날부터 집 바로 뒤 덤불 속에서 놀다가 산으로 올라가는 고라니 한 마리의 뒷모습까지 포착하는 행운까지 얻었다. 물론 여기에서도 노파심으로 앨리샤와 체셔를 자유롭게 집 밖으로 내보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자연의 내음이 지척에서 풍기는 이 집이라면 충분히 우리 가족들도, 나의 반려 고양이들도 자연을 만끽하며 지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자연의 향이 듬뿍 담긴 새집에서 맞이하는 새해인 만큼 고양이들도, 우리 가족들도 모두 앞으로 정말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마음 한가득 피어오른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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