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고향의 맛] 선운사, 풍천장어

장어 한 접시에 복분자 술 마시며 송창식의 '선운사' 흥얼

풍천장어는 전북 고창군의 주진천(인천강)과 서해가 만나는 고창군 심원면 월산리 부근에서 잡히는 민물 뱀장어를 가리킨다. 풍천이란 지명은 지도에 없는데도 사람들은 예부터 주진천 일대를 풍천강이라 불러왔다. 그래서 이곳에서 잡히는 뱀장어를 풍천장어라 부르고 있다.

그 풍천강 일대에서 잡히는 뱀장어들은 주로 고창의 선운사 주변 장어전문집에서 요리를 해서 팔았다. 주진천은 민물이 흐르는 강인데도 하루 두 번씩 바닷물이 밀고 들어온다. 이때 장어란 놈이 바람 속에 갈기를 세우고 바닷물과 함께 들어온다고 하여 바람 풍(風)자에 내 천(川)를 갖다 붙여 그렇게 불렀나 보다.

요즘 선운사 일대에서 성업 중인 장어요리 전문식당은 풍천장어를 팔지 않는다. 거의 100%에 가까울 정도로 양식 장어만을 취급하고 있다. 자연산 민물 장어는 귀하고, 귀한 만큼 값이 엄청 비싸다. 마리 당 굵은 놈은 20만~30만원을 호가하니 웬만한 재력가가 아니면 힐끗 쳐다보기도 힘들다. 그래서 고창군에선 양식 뱀장어를 갯벌에 풀어놓고 먹이를 주지 않는 '반 양식 반 자연' 사업을 펼치고 있다.

장어가 품고 있는 약리효과는 한마디로 대단하다. 비타민 A'B'E는 물론 칼슘, 마그네슘, 인, 철, 칼륨, 나트륨 등이 혈관에 활기를 주고 허약체질을 개선해 주며 산후 회복에도 좋다고 한다. 그것보다는 성기능 회복과 남성발기에 관심이 많은 남자들은 '텐트치기 특효'라는 소문만 듣고 장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사족을 못 쓴다. 나아가서 유효기간이 지난 늙은이들까지 꺼져가는 촛불의 마지막 불꽃처럼 큰불을 한 번 내보려는 엉큼한 속내를 숨기고 장어집을 기웃거리고 있다.

장어집 손님들은 주로 복분자 술을 마신다. 장어와 복분자는 궁합이 딱 맞아 둘이 컨소시엄을 이루면 효과와 효능은 배가된다. 복분자의 복(覆)은 넘쳐 넘어진다는 뜻이며 분(盆)은 요강을 가리키니 말 안 해도 알만하다. 장어가 텐트의 지주 역할을 하여 일으켜 세우면 복분자 술의 에너지가 요강을 넘어뜨릴 정도로 분출하니 '더 일러 무삼하리요'.

박지성 선수가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여 스트라이커로 명성을 날리자 세인의 관심은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그게 궁금했다. 월드컵대회를 앞둔 어느 날 박지성의 아버지가 텔레비전에 나와 하는 말이 "지성이의 보양식은 바로 장어입니다"라고 털어 놓았다.

그 방송이 나간 다음 날부터 꿈나무 선수들은 물론 체력보강이 필요한 스포츠 선수들은 장어집으로 몰려들었다. 운동선수들이 장어를 탐하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운동이라곤 야간 레슬링밖에 할 줄 모르는 배불뚝이 아저씨들까지 선수들 틈에 끼어들어 장어국물을 훌쩍거렸다고 한다.

선운사는 정말로 복 받은 절집이다. 사찰의 아름다움도 물론 한몫하지만 주변에 품고 있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사람들을 그러모으는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우선 도솔암 미륵불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그럴싸하고 입구의 동백 숲도 꽃이 필 땐 장관을 이룬다.

또 경내 부도밭에 서있는 백파 선사 부도비가 말해주듯 추사와 백파 선사 간의 선교논쟁만 해도 한나절 무료는 달래고도 남는다. 거기다가 추사가 종이쪽지에 적어 백파에게 건넨 석전(石顚)이란 아호가 나중 박한영에게 전해져 그가 우리나라 불교의 대종정인 석전 스님이 된 이야기는 스토리텔링 시대에 멋진 이야깃거리로 전해지고 있다.

근세로 넘어오면 이곳 줄포가 고향인 미당 서정주 시인의 이야기를 빠뜨릴 순 없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디다." 미당의 '선운사 동구'란 시가 새겨진 시비는 법당으로 올라가는 길가에 서서 선운사를 찾아오는 상심한 가슴들을 어루만져 주고 있다.

이렇게 선운사 경내를 두루 거쳐 도솔암까지 한 바퀴 둘러보고 내려와야 묵은 체증이 겨우 풀린다. 그런 연후에 풍천장어 한 접시에 복분자 술을 곁들여 마시면 어디선가 송창식이 부르는 '선운사'란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초겨울 선운사를 찾았다. 절 입구 삼거리에 있는 장어집에서 막걸릿집 주모의 육자배기 가락을 잊지 못하던 미당을 추모하며 술 한잔 마셨다. 그래, 조오타. 얼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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