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 시조로 푼 한시] 雨後(우후)/ 최립

남은 붉은 잎으로 푸른 물에 띄우네

가을은 쓸쓸하다. 거두는 계절이자, 떨어지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늦가을 비가 한 번 내리면 언제 다가왔는지 매서운 바람을 동반한 겨울 손님이 덥석 손을 부여잡는다. 어쩔 수 없는 계절의 탓이겠지만 떠나는 가을을 아쉬워한다. 새봄을 맞이하려는 부푼 기대를 갖고서. 거센 바람이 부니 수놓았던 수풀이 절반이 비었다. 이제 서서히 온 산이 가을빛을 거두어 가고 있으니 남은 잎이나마 푸른 물에 띄워보았다고 읊은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거센 바람 부는 아침 부슬비 내리더니

비단같이 수놓은 수풀 절반 비었구나

온 산은 가을빛 거두고 푸른빛만 띄우는데.

朝來風急雨濛濛 錦繡千林一半空

조내풍급우몽몽 금수천림일반공

已作漫山秋色了 殘紅與泛碧溪中

이작만산추색료 잔홍여범벽계중

【한자와 어구】

朝: 아침/ 來風: 바람이 불다/ 急雨: 거센 비가 내리다/ 濛濛: 비가 내리는 모양/ 錦繡: 비단으로 수를 놓다/ 千林: 많은 숲/ 一半空: 절반은 비다/ 已: 이미/ 作: 짓다/ 漫山: 온 산/ 秋色了: 가을빛을 거두다/ 殘紅: 남은 붉은 잎/ 與:~으로/ 泛: 띄우다/ 碧溪中: 푸른 시냇물 가운데.

'남은 붉은 잎으로 푸른 물에 띄우네'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동고(東皐) 최립(1539~1612)이다. 공주목사 재직 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594년 주청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형조참판을 지냈다. 시와 문에 탁월하여 한호(韓濩)의 글씨, 차천로(車天輅)의 시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렸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거센 바람 부는 아침 부슬비 내리더니/ 수놓은 비단 같던 수풀이 절반은 비었구려/ 이미 온 산은 가을빛을 거두고서/ 남은 붉은 잎으로 푸른 물에 띄우네'라는 시상이다.

이 시제는 '비가 온 뒤에는'으로 번역된다. 가을은 소소함을 느끼게 한다. 인생으로 치면 작가의 나이 50세를 넘기고 60세에 접어드는 나이다. 늦가을엔 비애를 느낀다. 여름내 무르익었던 곡식을 거두어들이는가 하면 주렁주렁 열렸던 과일도 수확하지만 낙엽만 말없이 떨어져 한 줌의 부토(腐土)로 돌아가는 엄숙한 순간이 가을이다.

시인은 저물어가는 가을에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 시간에 서성인다. 봄의 꽃보다 더 붉어 비단을 수놓은 듯했던 가을 단풍이 이제는 듬성듬성 쓸쓸해 보인다. 화려함을 발산했던 가을 산은 이제 수수함으로 돌아와, 아직은 맑고 푸른 시냇물에 여전히 붉디붉은 나뭇잎을 흘려보내며 내년 봄을 기약한다.

그러면서 화자는 온 산을 수놓았던 수풀은 절반이 비었다면서 가을빛을 거두고 있다고 했다. 외롭게 남아있는 붉은 잎을 푸른 물에 띄워 보내면서 싱그러운 푸르름을 더해 보고 싶다는 강한 소망을 담고 있다.

최립은 조선 중기의 문신'문인이다. 빈한한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굴하지 않고 타고난 재질을 발휘했다. 1555년 17세의 나이로 진사가 됐고 1559년(명종 14년)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1592년에 공주목사가 되었으며 이듬해에 전주부윤을 거쳐 승문원제조를 지냈다. 1594년 주청부사(奏請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데 이어 동지중추부사, 강릉부사, 형조참판 등을 지낸 뒤 사직하고 평양에 은거했다.

최립은 당대 일류의 문장가로 인정을 받아 중국과의 외교문서를 많이 작성했다. 중국에 갔을 때에는 중국 문단에 군림하고 있던 왕세정(王世貞)을 만나 문장을 논해 중국 학자들로부터 명문장가라는 격찬을 받았다. 그는 특히 초(草)'목(木)'화(花)'석(石)의 40여 종을 소재로 한 시부(詩賦)로 유명하다. 역학(易學)에도 심오하여 '주역본의구결부설'(周易本義口訣附說) 등을 남겼으며 글씨에도 뛰어나 송설체(宋雪體)에 일가를 이루었다. 저서에 '간이집'(簡易集), '한사열전초'(漢史列傳抄), '십가근체'(十家近體), '사한일통'(史漢一統), '한적목록 구장'(漢籍目錄 舊藏)이 있다.

장희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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