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간암 수술 받은 한성준 씨

가족 떠난 후 외로운 투병…지난달 암 재발

한성준(가명) 씨는 돌봐주는 사람도 없이 간암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떠나버린 아내와 딸은 연락조차 받지 않지만 한 씨는 아픈 자신을 탓한다. 한 씨는 다시 일을 하고 딸과 손주를 만나는 평범한 생활을 꿈꾼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한성준(가명) 씨는 돌봐주는 사람도 없이 간암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떠나버린 아내와 딸은 연락조차 받지 않지만 한 씨는 아픈 자신을 탓한다. 한 씨는 다시 일을 하고 딸과 손주를 만나는 평범한 생활을 꿈꾼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남자는 경제력이 있어야 합니다. 경제력이 없는 데다 아프니 아내와 딸이 떠났습니다."

한성준(53'가명) 씨는 급성심근경색과 간암, 당뇨, 고혈압 등 한 사람이 겪기에는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다. 지난 2012년 간암 수술을 받고 홀로 투병생활을 해온 한 씨는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의 병세를 설명했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 집을 나간 딸 얘기가 나오자 한 씨의 표정은 이내 일그러졌다.

◆불행은 갑자기 다가와

2003년까지만 해도 한 씨의 삶은 평범했다. 한 씨는 법인택시를 운전했다. 넉넉하지 않았지만 갓 대학에 들어간 딸의 학자금과 생활비를 충당할 만큼 돈벌이를 했다. 법인택시가 그렇듯 한 씨도 매일 회사에 사납금을 내느라 큰돈을 벌지는 못했다. 저축은 하지 못했지만 아내와 딸에게 꼬박꼬박 월급을 가져가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한 씨에게 갑작스런 불행이 닥쳤다. 병원 한 번 가지 않아 건강하다고 자부하던 그가 길을 걷다 갑자기 쓰러진 것. 응급차에 실려 온 한 씨는 급성심근경색의 판정을 받았고, 곧바로 수술했다. 병원에 온 뒤 그는 자신이 고혈압과 당뇨를 앓고 있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택시 운전하느라 바빠서 건강검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고혈압과 당뇨에다 심장까지 문제가 왔지만 가족을 위해서 이겨내야 한다고 다짐했어요."

심근경색 수술 이후 다시 택시 운전을 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알아봤지만 수술 병력 때문에 한 씨를 받아주는 회사는 없었다. 가정의 경제상황이 어려워지자 아내는 점점 웃음을 잃어갔다.

"아내가 눈에 띄게 달라졌어요. 20년 넘는 결혼 생활 동안 모아 놓은 돈은 없었고, 지병 탓에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남편 앞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도 아내가 함께 이겨내 줄 것이라는 희망은 있었는데…."

◆외로운 투병 생활

한 씨는 2005년 어느 날 믿고 싶지 않은 광경을 목격했다. 집에서 아내와 딸의 흔적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아내의 변화를 눈치 채고 있었지만 충격은 컸다. 대학 졸업을 앞둔 딸까지 함께 집을 나갈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한 씨는 "건강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하자 아내의 잔소리가 유난히 잦아졌다"며 "집을 나가기 얼마 전 딸이 늦게 들어와 다투면서 사이가 소원해졌다. 어릴 적에는 딸과 사이가 참 좋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 때문인가 싶어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냉장고와 김치냉장고, TV, 세탁기 등 고가의 가전제품도 함께 없어졌다. 지병이 많은 한 씨에게 꼭 필요한 보험도 사라졌다. 아내가 보험을 해약한 뒤 돈을 챙겨간 것이다.

"처음엔 아내와 딸이 사라졌다는 사실 자체에 망연자실했는데 살펴보니 집 안에 돈이 될 만한 것은 다 사라졌더군요. 아프고 돈도 없는 내가 너무 한심스럽고 아내가 원망스러워 한참을 울었어요."

아내와 딸이 떠난 뒤 한 씨는 혼자 남았다. 심장약, 고혈압약, 당뇨약 등 각종 약을 하루 30여 알 먹으며 자신을 지켜야 할 때도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벌이가 없었지만 아내와 딸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 지정도 받지 못했다. 결국 2007년 스스로 이혼을 선택했다. 혼자서 밥을 먹는 날이 이어졌다.

"혼자서 무슨 맛으로 밥을 먹겠어요. 해먹을 기운도 없고요. 아내와 딸이 떠난 이후에는 라면으로 배를 채우는 날이 대부분입니다. 몸에 나쁘다는 건 알지만 약을 먹으려면 라면이라도 먹어야 해요."

◆보고 싶은 딸

혼자 지내던 한 씨는 2011년 여름 또다시 간암 3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힘든 수술을 겪고 병실로 옮겨진 그의 옆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돌봐줄 사람이 없어 더운 여름 수술 부위는 짓무르기까지 했다.

병원 생활을 하던 어느 날 기적같이 딸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내와 딸에게 연락이 닿을 길 없던 한 씨는 딸의 전화가 마냥 기뻤다. 하지만 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결혼을 하게 됐는데 혼주 석이 비어 있으면 곤란하니 아버지가 자리를 채워달라고 했다. 냉정한 딸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지만 한 씨는 아픈 몸을 이끌고 혼주의 역할을 다했다. 딸과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식 이후 딸과 연락은 다시 끊겼다. 딸을 찾고 싶어 주거지를 확인했지만 본인이 동의하지 않아 주소조차 알 수 없게 되자 한 씨는 또다시 딸과의 인연을 포기했다.

한 씨는 다시 혼자가 됐다. 혼자 밥을 챙겨 먹고 하루 종일 혼자 지내야 했다.

"간암 수술 이후에는 기운이 더 빠져서 하루 종일 누워 TV를 보는 날이 대부분이에요."

안타깝게도 지난달 간암은 다시 재발했다. 보험조차 없는 그에게 각종 지병과 간암수술, 재발은 큰 부채로 남아 그의 일상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형제들이 있긴 하지만 자존심 탓에 도와달라는 연락도 하지 못한다. 어렵고 외로운 상황에서도 그는 자신을 떠난 아내나 딸을 탓하지 않는다.

"큰돈을 버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아픈 제 탓입니다. 얼마 전에는 딸에게 손주가 생겼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빨리 병이 나아서 일자리를 구하고 돈을 벌어야 해요. 경제력이 있으면 딸이 만나줄지도 모르니까요. 제 바람은 그뿐입니다."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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