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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의 눈] 한비문예창작대학 박문자 씨- 황혼의 팔순 할머니 시인 등단 꽃 '활짝'

"황혼의 늪에서 시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어느 초여름, 초록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며 시인이 되기보다 시를 쓴다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대구 남구 관덕정길 한비문예창작대학(지도교수 김원중)에서 시 창작수업을 듣는 박문자(82'사진) 할머니의 첫 시집 '초록에 젖다'에 나오는 말이다. 매주 수요일 오후 3~5시 수업이 있다. 문중 종부 같은 후덕한 인상을 지닌 할머니는 2009년 76세 때 처음 시를 접했다. 그 해 가을 월간 한비문학 시 신인상으로 시인 등단을 했다.

"섬유사업을 했던 남편 덕분에 경제적 어려움은 모르고 살았지만 자식들을 분가시켜 놓고 나니 내 삶이 없더라."

아들을 훌륭하게 잘 키운 것은 물론 전쟁으로 고아가 된 시댁 큰집 조카들을 친자식처럼 따뜻하게 키운 할머니의 허전한 빈자리를 채운 것은 바로 시였다.

가요를 좋아하던 할머니는 최백호와 장사익, 조용필 등 노래 가사를 외우다보니 어느새 시를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시집 '초록에 젖다'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노년의 8월 바다'와 2부 '쪽빛에 물들다' 3부 '세월을 등에 업고'에는 각 25편의 시가 실렸고, 4부 '또 다른 내일'에는 29편의 시가 실렸다. 박 할머니가 직접 찍어 집에 장식한 액자 사진을 한비문학 발행인(김영태)이 시집 중간중간에 소담스럽게 담았다.

김원중 시인은 "일흔이 넘어서 시를 공부하고 팔순에 시집을 처음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라며 "아무렇게나 쓴 작품이 아니라 한 편 한 편이 현대시의 무게를 지니고 있는 서정시라서 더욱 감회에 적게 한다"고 말했다. 초록에 물든 할머니의 멋진 노후 설계에 청마의 해가 한몫 크게 힘을 실어주리라.

글·사진 이정경 시민기자 kyung6378@hanmail.net

멘토·배성훈기자 baedor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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