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응답하라 1989'를 제작한다면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아마 아버지 버버리 코트를 훔쳐 입고, 성냥 하나 물고서 폼을 잡던 아이들이 될 것이다. 그만큼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대한민국의 문화계는 주윤발, 장국영, 왕조현, 임청하, 성룡, 원표, 여명과 같은 홍콩 배우들을 빼놓고 말할 수가 없다. 한국 이름과 비슷하지만 약간 이국적인 느낌이 있는 그들의 이름은 친근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2001년부터 신문에서 이들의 이름은 사라지고, 저우룬파, 장궈룽, 왕주셴, 린칭샤와 같은 이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전혀 친근하게 느껴지지도 않고 우리가 사랑했던 배우의 느낌은 전혀 나지 않는다. 이들의 이름을 이렇게 무리하게 표기하는 것은 국립국어원에서 제정한 외래어 표기 규정과 관련이 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외래어 표기 규정을 적용해 외국인의 인명도 심의하여 규정한다. 국제 교류가 빈번해진 시대에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외국 인명 표기는 외래어 표기 규정을 지키면서도 원래 발음을 최대한 존중하는 쪽으로 정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경우는 외래어 표기 규정 제4장 제2절 제1항에 "중국 인명은 과거인과 현대인을 구분하여 과거인은 종전의 한자음대로 표기하고, 현대인은 원칙적으로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라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신해혁명(1911년) 이전 시대의 인물인 '孔子'의 경우 '콩즈'라고 하지 않고 '공자'로 쓰고, 이후 시대의 인물인 '毛澤東'은 '마오저뚱'(毛澤東)과 같은 방식으로 쓰게 한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국립국어원에서 '저우룬파'라고 쓰라고 하고, 신문에서도 '저우룬파'라고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글에서 '주윤발'로 검색했을 때는 100만 건이 넘는 문서가 나오지만 '저우룬파'로 검색했을 때는 겨우 2만 건의 문서가 나온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사람들은 '저우룬파'라는 이름을 안 쓴다는 이야기다. 그 이유는 국립국어원에서 제안한 이름은 너무 어색하고, 그 이름으로는 배우들을 구분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할 점은 중국말과 우리말은 발음 체계가 달라서 아무리 비슷하게 한다 하더라도 정확한 중국 발음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용'을 발음하지 못해 '용사마'가 아닌 자기들 식으로 '욘사마'로 부른다. 독일 사람들은 '차범근'을 자기들 식으로 '차붐'으로 부른다. 전 세계 사람들은 '김연아'를 영어 표기대로 '유나 킴'이라고 부른다. 우리 언론에서는 그걸 역수입해서 '유나 킴이 돌아왔다!'와 같은 제목을 쓴다. 그러면서도 주윤발은 우리 식으로 부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민송기 능인고교사 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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