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친구들 계모임도 등산모임도 '딱'이에요

게스트하우스, 대구를 이야기하다 -2월 첫날 찾아온 손님들

2월 1일 공감게스트하우스를 찾은 첫 번째 여행자들. 여행계모임인
2월 1일 공감게스트하우스를 찾은 첫 번째 여행자들. 여행계모임인 '에스걸스' 멤버들은 대부분 대구경북에 살고 있지만 지척에 있는 집을 두고 이곳으로 하루짜리 여행을 왔다.
"비슬산, 팔공산 타러 왔어요" 인터넷 등산 동호회인 '지산갑' 회원들도 이날 공감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지산갑 회원들은 긴 설 연휴을 맞이해 따뜻한 도시를 찾아 대구로 산행을 왔다.

대구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는 어떤 여행자들이 찾아올까. 여행자가 많이 찾는 도시는 저마다 특색이 있다. 관광 대국인 제주도는 올레길과 한라산, 성산일출봉 등 내로라하는 관광지가 있고, 부산은 바다의 도시이며, 서울은 그 이름 자체로 관광객을 흡수한다. 사실대로 말하면, 여행 비수기인 겨울에 아파트와 빌딩밖에 보이지 않는 대구는 분명 매력적인 여행지가 아니다. 하지만 진정한 여행자는 계절과 장소에 연연하지 않는다. 설 연휴였던 2월 1일, 대구 중구의 작은 게스트하우스를 찾은 특별한 여행자들을 만났다.

◆ 게스트하우스, 2월 첫 손님은?

도심 속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겠다는 계획은 거창하게 세웠지만 덜컥 겁이 났다. 기자의 취재 계획을 들은 공감게스트하우스 허영철 소장은 "겨울철에 설 연휴까지 겹쳐 요즘에는 손님이 많이 없다"고 조심스레 운을 뗐다. 여행 성수기는 여름이다. 지난해 여름에는 석 달간 800명이 넘는 여행자가 이곳에 머물다 갔다. 허 소장은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하자마자 사람들이 몰려와 살이 7㎏이나 빠졌다. 비록 지금은 다시 쪘지만…"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허 소장은 컴퓨터로 예약 현황을 확인한 뒤 본인이 먼저 놀랐다. "설 마지막 연휴에 10명 정도 예약했네요. 그때 오면 손님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도 어떤 분들인지 궁금하네요. 허허." 설 연휴의 마지막 날은 이곳에서 보내는 것으로 명절 계획을 급하게 수정했다.

1일 오후 6시, 경남 고향집에서 차를 몰아 대구 중구에 있는 공감게스트하우스(이하 공감)로 곧장 향했다. 2월 첫날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이들이 대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했다. 공감 1층 카페에서 쌀과자와 곶감을 먹으며 한창 명절 분위기를 내고 있을 무렵이었다. 첫 번째 손님인 한 무리의 여성들이 나타났다. 맥주와 과자가 가득 담긴 봉지 꾸러미를 들고 방으로 향하는 그들을 쫓아갔다.

◆ "좋은 사람과 함께하면 그곳이 여행지"

4명의 20대 여성들은 영남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대학 동기다. 경기도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대구경북에 살고 있는 '지역민'이다. 조수민(25) 씨는 "멀리서 온 여행자가 아니라서 실망했겠다"며 기자를 다독였다. 하지만 이내 집을 지척에 두고 게스트하우스를 찾은 이유가 궁금해졌다.

이들이 공감에 온 것은 바로 여행 계모임(?) 때문이다. 모임 이름은 '에스(S)걸스'. 이슬기(27) 씨는 "다른 뜻은 없다. 이름 영문 이니셜이 전부 S로 시작해서 이렇게 지은 것"이라며 섣부른 예측을 일축했다.

에스걸스 멤버들은 2011년 대학을 졸업한 뒤 1년에 한 번씩 함께 여행을 하자고 약속하고 모임을 만들었다. 매달 조금씩 모은 돈을 여행 자금 삼아 전국 곳곳을 여행했다. 2011년 첫 여행지는 지리산 둘레길. 어떤 때는 전남 여수에 있는 작은 섬 '안도'에서 고즈넉한 날을 보냈고, 2012년에는 제주도로 겨울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서로 시간에 쫓겨 단체 여행을 하지 못했고, 금세 2014년이 왔다.

경기도 성남에서 온 이신애(27) 씨는 "설에는 다들 고향에 오니까 함께 모이기 딱 좋은 시기라고 생각했다. 하루만 묵는 호텔에 많은 돈을 쓰기 부담스러웠는데 대구에 좋은 취지로 생긴 게스트하우스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계절과 여행지보다 함께 할 수 있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둔다. 장선주(26) 씨는 "여행 성수기와 서로 바쁜 시간을 피하다 보니 매년 1~2월에 여행하게 되더라. 그래서 여행 사진이 죄다 겨울 사진밖에 없다"며 "여행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주 보지 못하는 우리가 지금 함께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중에 여건이 되면 함께 해외 여행을 가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 대구 명산 찾은 서울 손님들

두 번째 손님들을 맞이할 차례다. 이번에는 어떤 사람들이 올까. 오후 8시쯤 4명의 여행자가 1층에 나타났다. 첫 번째 손님들과 느낌이 사뭇 달랐다. 맥주나 음식 꾸러미는 양손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아웃도어 재킷을 맞춰 입고, 등산용 지팡이까지 가방에 꽂고 온 네 사람의 모습은 딱 봐도 등산객이다. '산 냄새'가 솔솔 나는 여행자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들은 서울에서 온 등산 동호회 회원들이다. 산행으로 피곤한 그들을 카페 의자에 앉히고 이 시간, 이곳을 찾은 이유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이들을 묶어준 동호회 이름은 '지산갑'으로 '지금 산으로 갑니다'의 약자다. 동호회 운영진인 최진호(34'경기도 고양시) 씨는 "지산갑은 8천 명의 회원을 보유한 2030세대가 모인 인터넷 등산 동호회다. 1980년 이후 출생자만 가입할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젊은 동호회"라며 지산갑 로고가 새겨진 배지를 내밀었다.

지산갑 회원들은 주말마다 산을 오른다. 네 사람은 얼마 전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에 다녀왔다. 최 씨는 "가리왕산은 평창 올림픽 스키장 건설 예정지라서 2월 1일부터 등산이 통제되는 곳이다. 산을 깎기 전에 꼭 오르고 싶어서 의기투합해 다녀왔다"고 말했다.

'산(山) 사람'들은 설 연휴 목적지로 대구를 정했다. 대구 산행을 추진한 사람은 신정원(32'여'경기도 성남시) 씨. "설 연휴가 꽤 기니까 여태 안 가본 지방으로 가봐야겠다고 생각했고 대구를 선택했어요. 나머지 조건은 날씨가 따뜻한 곳이어야 한다는 거였죠." 따뜻한 도시를 찾아온 그들의 계획은 성공이었다. 1일 대구의 낮 최고 기온이 18℃까지 올라갔다.

이날은 비슬산 등반을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최명진(31'경기도 의왕시) 씨는 "유가사로 올라가서 비슬산 휴양림으로 내려왔다"고 산행 경로를 설명했다. 최 씨는 "비슬산을 올라갈 때는 가을처럼 청명한 느낌이었고, 내려올 때는 봄 같은 느낌이었다. 참꽃이 만발하는 봄에 올라가면 참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 목적지는 팔공산으로, 부인사 쪽으로 올라가는 코스를 택했다. 비슬산과 팔공산, 대구의 명산 두 곳을 오르는 실속있는 등산 여행이었다.

서울 등산객들은 왜 하필 게스트하우스를 찾았을까. 신정원 씨는 "처음에는 찜질방이나 모텔에서 잘까 생각했지만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대구에도 게스트하우스가 많이 있더라. 잠만 자는 숙박업소보다 이왕이면 의미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묵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공감에 왔다. 시간이 되면 김광석 거리도 가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나자 손님들은 공감 스태프들과 가벼운 협상에 들어갔다. 토스트 등 가벼운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1층 카페는 오전 8시에 문을 연다. 하지만 다음 날 오전 7시에 팔공산으로 떠나는 이들을 위해 스태프는 쪽잠을 잔 뒤 오전 6시 30분에 문을 열기로 결정했다. 제 집을 찾은 손님들을 빈속으로 산에 오르게 할 수는 없어서다. 이처럼 게스트하우스에는 칼같은 규칙보다 정이 앞서는 경우가 많다. 이곳에 사람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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