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곰돌이의 근황이야."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애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내게 휴대폰 속 사진을 내밀었다. 사진 속 주인공(?)은 보송보송한 털을 자랑하는 새하얀 스피츠, '곰돌이'였다. 곰돌이는 몇 번 만난 적도 있고 친구를 통해 근황을 듣고 있는 친구네 반려 동물이다. 늘 개를 키우고 싶다고 졸라대던 4남매의 성화에 못 이긴 친구 아버지가 지인으로부터 얻은 강아지가 바로 곰돌이다. 네 마리 중 혼자만 유독 북극곰처럼 새하얗게 태어난 곰돌이는 현재 13년을 그 집 가족들과 함께 세월을 보내고 있는 '할머니 강아지'이다. 그리고 친구와 내가 나름 각별한 사이이기도 하고, 다른 의미에서도 곰돌이는 내게 특별한 녀석이기에 친구네 가족의 안부를 물을 때마다 꼭 곰돌이의 안부 역시 챙겨서 물어보게 된다.
곰돌이가 내게 특별한 까닭은 내가 생각했던 개라는 동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줬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내 뇌리에 선명하게 남은 개의 모습은 고등학교 때 찾아갔던 '애견 카페'에서의 모습이다. 막연하게 동물을 키우고 싶었지만 못 키우던 내가 대리만족이라도 하려고 찾아 갔던 그곳에서 만난 것은 큰 덩치의 개였다. 마치 표범처럼 생긴 외모의 시커먼 그 큰 개는 우리 테이블에 얼굴을 걸친 채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파르페를 바라보며 침만 질질 흘렸었다. 그 당시 개에 대해 무지했던 내게 그때의 그 모습은 꽤나 무서운 기억으로 남았다.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귀여운 동물'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실망시킨 것은 그 큰개만이 아니었다. 작은 덩치의 개들도 귀엽다며 내가 먼저 다가가면 대부분 뒷걸음질 치거나 숨어버렸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개과의 동물들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었다.
그런데 곰돌이는 여느 강아지들과는 달랐다. 처음 만났던 날, 반가운 마음에 다가갔던 나를 본 곰돌이는 낯선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뒷걸음질 치거나 하지 않았다. 여느 작은 강아지들처럼 사람을 반기기 위해 정신없이 폴짝거리거나 낯선 이를 경계하며 마구 짖어대지도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현관까지 나와서 나를 반겼다. 그 이후엔 소파에 앉아 있는 나와 내 친구 사이에 올라오더니 내 다리에 살포시 몸을 기대기까지 해 나를 감격시켰다. 그날의 다정다감하면서도 왠지 여유가 넘치는 곰돌이의 모습에 반한 내게 곰돌이는 가장 이상적인 반려견의 모습으로 각인되었고, 마치 나의 친구인 것처럼 종종 생각나게 하고 궁금하고 보고 싶은 대상이 되었다.
곰돌이의 매력은 또 있다. 친구네 어머님이 과일을 깎을 때면 그 껍질을 얻어먹기 위해 얌전히, 정말 얌전히 옆에 앉아서 기다리는 참을성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간식'이라고 하면 간식 서랍 앞에, '산책'이라고 하면 목줄이 있는 서랍 앞에 먼저 조르르 달려가며, 전화통화만으로도 가족들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영리함까지 갖추고 있다.
작년 겨울엔 곰돌이가 다리를 다쳐 수술을 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소파에서 내려오다가 그만 다리를 다친 것이다. 때마침 친구네 집에 있었는데, 곰돌이를 위해 재활 운동을 시켜주던 친구의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곰돌이의 앞발을 올려 잡고 있는 친구와, 자신의 양 앞발을 맡긴 채 한발 한발 걸음을 내딛는 곰돌이, 그 둘을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둘 사이에 흐르는 사랑과 믿음이 너무 좋아보였다. 비록 곰돌이가 내 반려견은 아니지만, 늘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한다. 되도록 앞으로도 오래, 쭉 말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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