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 시조로 푼 한시] 七夕 (칠석) / 서하 임춘

해마다 오작교 만드느라고 고생하오

재촉하는 가을 하늘에 은하수와 달빛, 견우와 직녀의 만남, 까마귀와 까치가 짓는 오작교(烏鵲橋) 등 칠석을 서술한 맛깔난 시다.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애절한 사연을 담고 있기에 그들의 만남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칠석을 노래하는 시가 이것뿐이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었던 시절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은하수 저리 맑고 달빛까지 풍요한데

이 밤에 만난 신선 이 또한 좋지 않나

까마귀 오작교 만드느라 저렇게들 고생한데.

銀河淸淺月華饒 也喜神仙會此宵

은하청천월화요 야희신선회차소

多小人間烏與鵲 年年辛苦作仙橋

다소인간오여작 년년신고작선교

[한자와 어구]

銀河淸: 은하는 맑다. 淺月華: 달빛이 깊다. 饒: 풍요롭다. 也喜: 좋은 일이다. 神仙: 신선. 會此宵: 이 밤에 만나다. // 多小: 다소, 곧 수많은. 人間: 인간 세상. 烏與鵲: 까마귀와 까치들. [與]는 ~과를 뜻함. 年年: 해마다. 辛苦: 고생하면서, 고생하다. 作: 만들다. 仙橋: 오작교.

해마다 오작교 만드느라 고생하오(七夕)로 제목을 붙여본 고시체 중 첫 번째인 칠언절구다. 작자는 서하(西河) 임춘(林椿: ?~?)으로 이인로, 오세재 등과 함께 강좌칠현의 한 사람이다. 한문을 잘했고, 특히 당시에 능하였다. 친구 이인로가 '서하선생집' 6권을 엮었고, 두 편의 가전체인 국순전(麴醇傳), 공방전(孔方傳) 등이 함께 전해진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은하는 맑고 달빛도 풍요로운데/ 신선이 이 밤에 만나는 것 또한 좋으이// 인간 세상의 수많은 까막까치들/ 해마다 오작교 만드느라고 고생하오'라는 시상이다.

이 시제는 '칠월칠석'으로 번역된다. 가을을 재촉하는 좋은 밤이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 번 만나는 칠석이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 은하가 가로 놓여 만나지 못하자 까막까치가 날아가 직녀와 견우의 만남을 위한 다리를 놓는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다. 가슴뛰는 로맨스가 아닐 수 없다.

중국에서 시작되는 직녀성과 견우성은 독수리 별자리(鷲星座)의 알타이르(Altair)별과 거문고별자리(琴星座)의 베가(Vega)별을 말한다. 이 두 별은 매우 멀리 떨어져 있어서 빛의 속도로 다가간다 해도 몇 십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다는 이야기는 이 설화에서 무의미하다.

예부터 부인은 음식을 차려놓고 직녀처럼 바느질 솜씨가 좋아지길 기원했다. 수고하는 까마귀의 밥을 지어 올려 자손들의 명을 빌며, 한 해 농사의 흉풍을 점쳤다. 남녀의 애절한 사랑과도 같은 이 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사람들은 견우성과 직녀성에 대한 이야기를 칠월칠석에 비유하기도 한다.

서하 임춘(?~?)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다. 고려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예천(醴泉)으로 자는 기지(耆之), 호는 서하(西河)다. 고려 건국공신의 자손으로 아버지 광비(光庇)와 큰아버지 종비(宗庇) 모두 한림원의 학사직을 지내 구 귀족사회에서 정치적'경제적 기반을 지니고 있었다.

큰아버지 종비 아래에서 학문을 배우면서 청년 시절부터 귀족 자제다운 삶을 누렸다. 그가 20대였던 1170년(의종 24년)에 무인란이 일어나면서 임춘의 삶은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된다. 1차 대살육 때 일가가 화를 당해 조상대대의 공음전(功蔭田)조차 일개 병사에게 빼앗겼다. 개경에서 5년 정도 숨어 지내면서 출사(出仕)의 기회를 엿보았으나 친지들로부터도 경원당하자 살아남은 가속을 이끌고 영남 상주의 개령으로 옮겨가 7년 정도 유락생활(流落生活)을 했다. 현존하는 그의 글 중 많은 것이 이 당시에 집필됐는데 대부분 실의와 고뇌에 찬 생활고를 하소연하는 것들이다.

1180년, 1183년에 절친한 친구였던 이인로와 오세재가 연이어 과거에 합격했다. 이때쯤 개경으로 다시 올라와 과거 준비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얼마 뒤 경기도 장단(長湍)으로 내려가 실의와 곤궁 속에서 방황하다가 30대 후반에 요절했다. 임춘은 이인로, 오세재 등과 더불어 죽림고회(竹林高會)에 나가 술을 벗하며 문학을 논해 고려 중기 문단을 대표하는 문인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문집으로 '서하집'이 있으며, 한국 가전문학(假傳文學)의 선구적 작품인 '국순전'(麴醇傳), '공방전'(孔方傳)을 남겼다.

장희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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