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금성·동아 떠날때 대구 둥지 지킨 출판 산증인 도서출판 '學而思' 회갑

前身 이상사 사전류 명성 6·25 피란 와 개명 후 정착

대구 출판 역사의 산증인인 도서출판 '學而思'(학이사)가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이했다. 학이사의 전신은 이상사(理想社)로 국내 대표 출판사인 금성, 동아 등과 함께 1950년 6'25전쟁 때 대구로 피란 왔다. 전쟁이 끝나고 금성과 동아 등 다른 출판사들이 대부분 서울로 돌아갔지만, 이상사는 1954년 1월 4일 대구에 출판등록을 하면서 새둥지를 틀었다. 이후 2005년 회사 이름을 학이사로 바꾸면서 사전류와 초'중'고교 학습 부교재와 순수창작물, 인문서적, 실용서적 등을 모두 발간하는 종합 출판사로 거듭났다.

학이사의 전신인 이상사는 국내 사전류 출판의 선두 기업이었다. 주로 옥편, 국어사전, 영어사전, 일어사전을 발간했고, 1954년 이래 500여 종을 상업출판(저자가 책 출판비를 부담하는 '자비출판'의 상대개념으로 출판사가 기획과 출판을 책임지고 서점 등에 판매하는 방식)했다. '초등학교 국어사전'은 연간 10만 권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학이사 신중현(53) 대표에 따르면 한국의 출판시장은 1960년대와 70년대는 옥편과 사전류가 강세였고, 이후 2000년 중반까지는 대학교재, 국어 및 영어사전, 영어 단어장이 강세였다. 2010년 이후에는 교육전략서, 학습 부교재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순수문학은 예나 지금이나 인기가 없다고 한다.

2000년 이후 학이사가 펴낸 책 중 가장 많이 팔린 것은 진학지도 전문가 윤일현 씨의 '부모의 생각이 바뀌면 자녀의 미래가 달라진다'이다. 이 책은 대구경북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또 정홍규 신부의 칼럼집 '오산에서 온 편지', 문무학 대구문화재단 대표의 '사랑이 어떻더니' 등이 학이사의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학이사에서 출간한 김몽선의 '재미있는 글짓기'는 프랑스 파리 7대학의 한국어학과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신중현 대표는 1987년 이 회사(당시 회사명은 '이상사')에 편집부 사원으로 입사해 편집과 영업 등을 섭렵하고 대표직에 오른 사람이다. 최태성 이상사 창업주는 출판사를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2005년 신중현 대표에게 조건 없이 물려주었다고 한다. 당시 '지역 청년에게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주어졌다'며 하청호, 심후섭, 권영세 등 지역의 선배 문인들이 '기념 원고'를 내놓았고, 그 덕분에 3권의 책을 출판해 경영에 도움을 받기도 했다.

학이사는 대구에 소재한 600여 개 출판사와 인쇄사 중 드물게 '상업출판'에 주력하는 종합 출판사다. 펴낸 책들을 저자에게 판매하기보다는 전국의 온라인 서점과 120여 개 오프라인 서점을 통해 독자들에게 판매하는 데 주력한다. 2010년 이후에는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과 대구테크노파크의 도움을 받아 현재까지 100여 종의 e-book과 소리책을 제작해 출판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대처하는 한편 종이책에 높은 수익도 올리고 있다.

신 대표는 근래 대구의 출판 경향에 대한 우려도 털어놓았다.

"작가들이 독자의 선택을 받기보다 자신의 책을 거의 전량 자신이 구입해서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방식으로 책을 소진하기 때문에 시장에서 작가가 성장하지 못하고, 독자들 역시 책을 공짜로 받는 데 익숙해져 책을 구입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출판사 역시 책을 저자에게 판매하는 손쉬운 방법(자비출판)에 의존하다 보니 기획출판이나 마케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결국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신 대표는 "누가 책을 내면 공짜로 한 권 받아야 낯이 선다는 생각을 버리고, 주변에서 책을 내면 한두 권쯤 사서 읽는 것이 작가와 지역 출판을 살리는 길"이라고 조언한다. 그래야 작가가 '책 제작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좋은 책'을 쓰는 데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대구가 출판도시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작가와 독자, 출판사와 서점 등이 함께 힘을 모아 '쉬운 길'보다는 '어려운 길'을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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