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의사이자 독립운동가인 박서양(1885~1940)은 백정의 아들이었다. 선대부터 백정이 어떻게 박씨 성을 가졌는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박서양이 의사가 된 것은 아버지 영향이 크다. 박성춘은 의료선교사 에비슨과 친교를 맺으면서 후에 장로가 된다. 그가 아들을 에비슨에게 부탁, 박서양은 제중원에서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의술을 배웠다. 세브란스의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세브란스 간호원 양성소 교수로 활동했다.
교수 생활 초기에 학생들은 박서양이 백정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무시했다. 그러자 그는 "내 속에 있는 오백 년 묵은 백정의 피를 보지 말고 과학의 피를 보고 배우라"며 학생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교육자로 활동했지만 백정 출신에 대한 무시와 냉대, 조롱은 그를 오래도록 괴롭혔을 것이다.
그는 1918년 만주로 건너갔으며, 독립군을 돕고 의술 활동을 했다. 그가 만주로 떠난 뒤 그의 행적은 일제가 남긴 군(軍) 기밀 서류에만 남아 있었다. 잊혔던 박서양의 독립운동 기록은 박형우 연세대 의대 교수가 발굴했다. 이 기록으로 그는 숨진 지 68년이 지난 2008년에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을 받았다. 1940년 오늘은 그가 사망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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