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샤사는 콩고민주공화국의 수도다. 1966년까지 레오폴드빌로 불렸다. 19세기 후반 벨기에를 통치한 레오폴드 2세에서 따온 명칭이다. 잔혹한 군주인 레오폴드 2세는 서구 열강의 아프리카 식민지 쟁탈전에 불을 댕긴 장본인이었다. 1884년 베를린회의를 통해 그가 벨기에 영토의 75배에 달하는 콩고를 사유화하면서 비극은 시작됐다.
그는 원주민을 강제 동원해 상아와 고무 수액을 채취했다. 할당량을 어기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채찍을 가하고 손목을 잘랐다. 선교사를 통해 이런 악행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비난이 쏟아졌다. 식민지 경쟁을 벌였던 영국'프랑스마저도 '야만과 잔혹의 극치'라고 야유했고, 가톨릭계는 '지옥에 갈 짓'이라고 비난했다. 25년간의 대학살로 약 1천만 명이 희생됐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콩고 대학살을 다룬 '레오폴드의 유령'에서 작가 아담 호크쉴드는 "당시 유럽 언론은 그를 사재를 털어 아프리카에 공익 사업을 펼친 인도주의자로 칭송했다. 하지만 실상은 약탈과 살육의 역사"라고 고발했다.
'도둑맞은 아이들' 스캔들이 프랑스에서 화제다. 1960년대 프랑스에서 인구 감소 문제가 대두되자 지방 인구를 늘린다는 이유로 인도양의 프랑스령 레위니옹 섬에서 20년간 아이들을 강제 이주시켜 부려 먹은 일 때문이다. 프랑스 의회가 당시 국가의 관여와 잘못을 공식 인정하는 결의안을 18일 표결에 부쳤다.
1963년부터 1982년까지 정부 주도로 레위니옹 어린이 총 1천600여 명이 프랑스 중부 시골로 보내졌다. 드골 전 대통령의 측근이자 총리를 지낸 미셸 드브레가 착안한 이 일로 많은 아이가 농장에서 혹사당하다 자살하거나 정신병원에 수용됐다. 결의안은 "돌이킬 수는 없어도 피해자들이 역사와 화해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명시했다.
1950년대 케냐 독립 투쟁 시 가혹 행위에 대해 최근 영국이 공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사례도 없지 않다. 하지만 숱한 역사적 비극이 여전히 은폐되거나 부인되고 있다. 케네디 주일 미국대사가 NHK 인터뷰를 거부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군 위안부는 어디에도 있었다"는 모미이 NHK 회장의 발언과 "난징 대학살은 없었다"고 부인한 햐쿠타의 망언을 문제 삼은 것이다. 프랑스 의회 결의안이 악행을 부인하기에 바쁜 일본에 또 한 수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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