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눈 많은 바다 근처 산, 사고 피해 키운 '깡통 체육관'

경주 마우나리조트 참사…지붕 경사도 15도, 비상구 한 곳 설계도 문제

18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직원들이 붕괴 사고가 난 경주시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에서 현장 감식을 실시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18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직원들이 붕괴 사고가 난 경주시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에서 현장 감식을 실시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의 원인이 설계 구조상의 결함이나 부실시공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붕의 경사도가 낮아 제대로 눈이 흘러내릴 수 없었고, 지형이나 기후와 맞지 않는 공법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안전점검이 전무했던데다 시공과 감리를 같은 업체가 맡은 점에도 의심 어린 시선이 쏠린다.

◆설계상 문제 없었나?

전문가들은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의 설계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지붕에 쌓인 눈을 치우기가 사실상 쉽지 않은 만큼 어느 정도 눈이 쌓이면 저절로 흘러내릴 수 있도록 충분한 경사를 줘서 지붕을 설계했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체육관 지붕의 기울기는 15도 정도에 불과해 눈이 미끄러지지 않고 고스란히 쌓일 수밖에 없었다.

현장을 찾은 전문가들은 "지붕에 열선(熱線)을 설치하거나 지붕 기울기를 높여야 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대부분 샌드위치 패널 건물들의 지붕 기울기는 상대적으로 평평하게 설계돼 있지만 눈이 많은 지역이라면 경사도가 평균 40도가량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사도 15도는 빗물이 흘러내리는 정도이고, 눈이 흘러내리려면 40도 정도는 돼야 한다. 기울기만 넉넉하게 설계했어도 이런 대형 참사를 피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지역대학 건축학과 모 교수는 "기둥이 없어 수평력이 약하고 바람에 취약한데다 눈이 많이 오는 바닷가 인접한 산 정상에 PEB 공법을 활용한 건물을 짓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경제성만 따지다 보니 구조적으로 취약한 건물을 지은 것 같다"고 했다.

사고 체육관의 벽면 기둥에 쓰인 철골 자재가 충분한 강성(剛性)을 갖지 못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건물 앞부분 기둥이 약해서 그곳부터 먼저 무너져 내렸다는 것.

오후 4시부터 이어진 동아리공연과 레크리에이션이 약해진 구조물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대형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의 진동이 일정 부분 원인이 됐다는 설명이다. 무대가 있던 쪽부터 천장에 균열이 시작된 점이 이를 방증한다는 것.

경북대 건축토목공학과 이정호 교수는 "건축물 상태도 안 좋은 상황에서 대형 스피커에서 터져 나오는 진동이 엄청난 눈 무게와 습기 탓에 약해진 건물에 악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조적인 부실시공?

마우나오션리조트의 콘도는 '시설물 안전 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정기점검을 받는다. 그러나 붕괴 사고가 발생한 체육관은 특별법 관리 대상이 아니다. 체육시설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정부 지정 전문기관의 정기 안전점검과 정밀 안전진단도 피해갔다.

이런 건물들은 '재난 및 안전 관리 기본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나 소유주 책임하에 안전점검을 해야 한다. 그러나 사고 체육관은 이마저도 빠져나갔다. 면적이 점검 대상 기준인 연면적 5천㎡ 이상보다 작았기 때문이다. 사고 체육관의 연면적은 1천205㎡다.

법망을 빠져나갔더라도 건물주가 자체적으로 안전점검을 해야 하지만 사고 체육관은 2009년 9월 준공 승인을 받은 뒤 단 한 번도 안전점검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다중이용시설임에도 비상구가 없었다는 점 또한 피해를 키운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사고 당시 학생들은 뒤쪽에 있는 유일한 출입구로 한꺼번에 몰려들다가 무너진 지붕에 깔리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 일부 학생은 창문을 깨고 건물을 뛰쳐나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2009년 체육관 건립 당시 설계와 감리를 한 업체가 맡았던 점도 의혹을 사고 있다. 당시 설계와 감리는 경북 지역의 L모 건축사사무소가 맡았고 S건설이 시공했다.

오랫동안 PEB 공법 건물을 지었다는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건축물관리대장에는 시공'설계'감리업체가 다르지만 실제로는 철골회사가 설계와 시공을 직접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설계'발주'시공'감리가 전혀 서로 통제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부실시공을 막겠느냐"고 했다.

◆경찰 수사 어떻게 진행되나

경찰도 이 점에 주목하고 있다. 단순히 눈이 많이 온 것만으로 대형 건축물의 지붕이 삽시간에 무너졌으리라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북경찰청은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현장 감식을 통해 행사 대행업체와 회사 관계자의 업무상 과실 여부, 건축법 위반 여부를 집중 조사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18일 시공사와 설계사무소 등을 통해 도면과 시방서 등 관련 서류를 확보하는 한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감식 조사를 벌였다.

경찰은 관련 서류를 검토해 규격 자재를 사용했는지 여부와 시공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등을 검토 중이다. 또 하중 기준 준수 여부와 조명과 무대 설치에 따른 시설물 변경 등이 있었는지도 살펴볼 계획이다. 시설물안전협회 등 전문기관의 조언도 받기로 했다.

국과수의 감식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2, 3주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 관계자는 "설계대로 지었다면 폭설이 왔다는 이유로 폭삭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부실시공이나 설계나 시공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등을 면밀히 따져볼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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