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또 하나의 대한민국?

우리나라를 '작은' 반도 국가라고 부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따지고 보면 전 세계 200여 개 나라 중에서 우리보다 훨씬 작은 나라도 많다. 워낙 땅덩어리가 크고, 힘센 나라들로 둘러싸여 있어 상대적으로 우리가 왜소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것도 남북으로 쪼개져 있으니 심리적 위축감은 더 클 것이다.

이런 우리나라가 크게 생각될 때가 있다. 이번 겨울 서울과 수도권이 폭설과 한파로 난리가 났을 때, 대구의 하늘은 멀쩡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서울공화국주의자들은 조그만 나라에서 무슨 '국가 균형 발전'이니 '남부권 신공항'이니 하느냐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그런 그들이 판이하게 다른 서울과 남부 지역의 날씨를 제대로 알면 "우리나라도 생각보다 크네!"라며 적잖이 놀랄 것이다.

요즘에는 노동계의 이슈와 대구경북의 현실을 비춰보면서, " 과연 대한민국이 하나의 국가인 게 맞나?"라는 의문이 든다. 통상임금과, 정년 연장 및 이에 따른 임금피크제 도입 여부는 올해 대한민국 노동계의 최대 이슈가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2016년부터(300인 미만 사업장은 2017년부터) 정년 60세를 보장하도록 하는 법 시행 시기보다 2년 앞당겨 정년을 연장하고, 56세부터는 전년보다 임금을 10%씩 줄이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해 주목을 받고 있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현대차를 비롯해 강성 노조가 있는 몇몇 사업장은 임금피크제에 대한 합의가 쉽지 않겠지만, 상당수의 대기업이나 중견기업들은 삼성의 사례를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회사가 휘청거리는데 억지만 부릴 수 없는 탓이다.

한국경영자총회는 임금피크제 도입 없이 정년이 연장될 경우 최소 90조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기업 측 부담이 경영자 입장에서 좀 부풀려지지 않았겠나 생각되지만, 어쨌든 기업으로서는 상당한 부담이 추가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대구경북 산업 현장의 목소리는 마치 딴 세상 같다. "정년요? 일손을 못 구해 난린데 정년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임금피크제도 남의 일이죠. 어차피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주고 있으니, 임금피크제고 뭐고 논의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아마 대구에서 가장 크다는 성서산업단지 입주 업체의 80%는 비슷한 상황일걸요."

대기업이나 몇몇 알짜 중견기업에 종사하는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구경북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통상임금 논란에 직면하면 더욱 슬퍼진다. 지난해 말 대법원 판례에 따른 통상임금은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이라는 구체적 요건을 제시함으로써 (노사 간 논란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에게 아주 유리한 상황이 조성됐다. 기술수당, 근속수당, 가족수당(부양가족 수와 관계없이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가족수당분), 성과급(최소 한도가 보장되는 성과급), 정기 상여금 등이 모두 퇴직금과 초과 근무수당을 계산할 때 포함되게 됐다.

당연히 노동자들의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 대구경북에서 열린 통상임금 설명회 자리에는 회사 측 사람들만 가득하고, 정작 노동자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노조가 구성되어 있는 기업이 적을 뿐만 아니라, 노조가 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전체로는 노동계의 과도한 요구가 걱정스러운 반면, 대구경북의 근로 행정은 어떻게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자기 권리를 찾게 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형편이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후보들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후보자나 유권자 모두 특히 조심해야 한다. 서울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자칫하면 우리 지역을 서울과 수도권의 아류로 생각하기 쉽다. 진실은 '서로 다른'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이다. 현실을 제대로 간파한 지도자만이 진정한 지역 발전을 이끌어 갈 수 있다. 대구경북의 노동자, 서민들도 허리 좀 펴고 살 날이 하루빨리 올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지역민의 삶을 책임질 지도자를 선택하는 이번 선거가 그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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