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40대는 지금 '밴드'에 빠져 있다. 밴드에서 동창들을 찾아 소통하며 동질감을 확인하고 있다. 40대 초반인 기자도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 밴드의 문을 두드렸다. 늦은 밤이었으나, 가입하자마자 잇따른 축하 인사말에 한참이나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어내지 못했다. 가물거리는 이름 옆에 붙은 사진은 앳된 옛모습을 대신해 아저씨, 아줌마가 자리했다. 그날 밤 기억에서 지워진 이름을 찾느라 여태 한 번도 꺼내보지 않았던 졸업앨범도 펼쳐봤다. 잠깐의 추억 여행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러다 한동안 연락이 끊긴 친구와 잠시 통화할 기회를 얻게 됐다. "잘 살제?"라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잘 산다고 해야 할지"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듣기로는 결혼해 아이 둘의 아빠가 된 친구는 번듯한 직장에 자기 이름으로 된 아파트를 가진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지만 '잘 사는 게 뭔지'에 대한 해답은 아직 찾지 못한 듯했다. 꼬치꼬치 캐물어 보지 않았다. 나 또한 자신 있게 들려줄 수 있는 대답이 아니어서였다. 공자는 마흔을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불혹'(不惑)이라고 했건만, 적어도 나와 나의 친구에겐 적용되지 않는 말 같았다.
이 시대를 사는 마흔은 많은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 앞선 세대가 이뤄놓은 고도성장 덕분에 컴퓨터로 리포트를 쓰고, '삐삐'와 PC통신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서태지의 노래를 들으며 막걸리가 아닌 맥주를 마셨고 록카페에서 청춘의 에너지를 발산했다. 배낭여행, 어학연수로 소위 외국물을 먹는 기회도 많았다. '달콤한 청춘'의 시기를 보냈지만, 지금은 예전의 40대가 누렸던 안정감을 찾기 어렵다.
2차 베이비붐으로 동년배 숫자가 유난히 많아 치열한 입시경쟁을 치렀고, 졸업 즈음엔 외환위기(1997년)에 사회진출의 발목이 잡혔다. 닷컴 버블, 신용카드 사태, 금융 위기 등을 버텼지만, 과장-차장-부장으로 쉽게 올랐던 '승진의 에스컬레이터'마저 고장 났다. 중간 관리자 지위에 올랐으나 실적 압박과 후배들의 실력 압박에 또다시 시달리고 있다.
자신을 포함해 평균 3.68명의 식구를 돌봐야 하지만 월평균 426만원을 벌어 생활비와 대출금 이자 등으로 330만원을 쓰고 나면 한 부모의 자식 노릇도,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체면을 세우지 못한다. 노후준비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먹고사느라 앞만 보고 내달린 40대에게 동창 밴드는 "잘 살아왔다"며 서로 위로하는 창구이며, 현실의 거친 숨을 잠시 고르는 휴식처이자 걱정 없던 시절로 떠나는 추억 여행이다.
우리 사회는 40대에 또 다른 주문을 하고 있다. 통계청의 장래인구 추계에 따르면 중위연령이 올해 처음 40대(40.2세)로 넘어왔다. 이는 한국 사람 5천만 명을 모두 나이순으로 한 줄로 세웠을 때 한가운데 선 사람의 나이이며, 사회의 인구구조에서 무게 중심이 됐다는 뜻이다. 10대 후반 고교생들이 4'19혁명에 앞장선 1960년 중위연령은 19세, 20대가 민주화 운동의 주도권을 잡고 한국사회를 변화시켰던 1980, 90년 중위연령은 21.8세, 27세였다.
이제 40대가 한국사회의 주도권을 쥐게 됐다. 사회와 내 부모, 내 자식을 위해 큰 걸음을 내디딜 때라는 말이다. 동질감으로 뭉친 밴드가 그 힘을 응집하는 창구가 되길 바란다. 40대여, 다시 한 번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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