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 좀 더 드리까예~.' '아줌마는 칼국수 양 적게 해가 드리마 되겠지예. 오랜만에 오셨네예~.'
오후 두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재차 재촉하는 칼국수 배달 전화의 수화기를 내려놓으면서 등산복 차림의 젊은 식당 여주인은 분홍색 목단 그림이 그려진 알루미늄 쟁반을 놓는다.
오늘은 장사가 매우 잘돼서 살맛 난다며, 사우나에 앉아있는 아줌마처럼 얼굴에는 땀으로 번들거린다. 좁은 주방에서 주인아줌마의 바쁜 손동작과, 부산스럽지만 절도 있고 당차게 움직이는 뒷모습은 섹시하기까지 하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등산복 차림의 중년 아저씨는 후루룩 짭짭, 아주 박력 있는 소리를 내면서 파란 배춧잎이 듬성듬성 들어가 있는, 곰탕보다 더 진하고 뽀얀 국물의 칼국수를 아주 맛있게 드신다. 이 집의 특징은 들깨이다. 옆에 앉은 아저씨의 칼국수 그릇 속에도, 내가 주문한 찹쌀 수제비 안에도 고소한 들깻가루가 뻑뻑하게 들어가 있다.
10분 단위로 시간을 체크하면서 보내고 있는 도시적인 커리어 우먼의 빡빡한 일상에서 아무런 목적 없이 전통시장으로 라이프 스테이지를 옮겼다. 소박한 점심식사 한 끼에서 또 삶의 작은 행복과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다. 마음이 충만해져서, 독일의 호프집에서처럼 벽에 걸린 종이 있다면 힘차게 흔들어 브라보를 외치며 함께 앉아 있는 이들의 식사비를 지불하고 싶었다. 아, 기분 좋게 배가 부르다. 멸치 우린 물에 진한 들깻가루 국물, 미역과 황태가 함께 어우러져서 편안하면서 깊은맛을 냈다. 조미료는 딱 한 꼬집만 들어 있다. 기가 막힌 국물 맛이다. 비싼 대각을 사용하지도 않았고, 황태채도 투박스러운데,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오십 년 정도 부엌 살림을 한 시어머니의 손맛이 난다.
백 프로의 찹쌀이 아닌 새알심의 조금 거친 식감은 꽃샘추위를 포근하게 감싸기에 충분한 국물 맛 뒤에 자연스럽게 숨고 말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의 삶에 활력소를 불어넣는 의식행사처럼 전통시장에 꼭 방문한다. 필자는 칠성시장의 야채 코너를 무척 좋아한다. 제사상에 차곡차곡 쌓아 놓은 과일처럼 정성껏 매무새를 만져서 쌓아 올린 채소탑은 뉴욕 유니언스퀘어의 그린마켓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과일은 과일끼리, 흙이 묻은 우엉과 연근, 마, 도라지는 자기 구역을 차지하고 끼리끼리 모여 영역을 정하고 있다.
최근 육식을 줄곧 먹었더니, 야채를 보는 것만으로도 몸속의 피가 깨끗해지는 것 같았다.
벌써 쑥이 나오고, 달래, 냉이, 봄동, 곰취, 미나리, 머위, 돌나물이 보인다. 비닐에 봉지봉지 소담하게 담긴 정겨운 한국의 채소들이다. 이 기운을 우리 집 식탁에도 그대로 옮겨 오고 싶어서 봄 채소 이것저것 좀 많이 구입을 했다.
오늘 저녁 반찬은 달래를 잘게 다져 넣고, 집간장과 진간장의 비율을 6대 4로 하여, 고춧가루, 매실 진액, 고소한 국산 참기름을 넣고 달래장을 만들었다. 불을 통과할까 말까 할 정도로 아주 살짝만 불기운을 입힌 재래김에 싸서 먹으면 정말 맛있다. 바다의 맛과 달래의 쌉쌀한 맛이 매우 잘 어울린다. 이때 김은 가위를 대어 자르지 않고 접어서 손으로 잘라야 한다. 반드시. 달래장은 무밥이나 콩나물 밥의 비빔양념장으로도 참 잘 어울린다.
미더덕을 조금 넣어 시원한 냉이 된장국을 끓이고, 미나리 전을 부쳐내었다. 물론 미나리는 생으로 날된장에 찍어 먹도록 따로 준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봄동은 새콤달콤하게 초간장양념을 만들어 식탁 차리기 바로 직전에 버무려 내고 통깨를 솔솔 뿌린다. 곰취는 데쳐서 집간장과 쌈장을 조금 넣고 심심하게 무친다. 참기름은 아주 조금만 넣는다. 한두 방울 똑.
요즘 우리 집 식탁의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케일은 물 끓을 때 넣고, 하나, 둘, 셋, 넷, 다섯, 딱 5초만 데친다. 오늘 저녁 밥상에는 쓰디쓴 머위도 함께 쌈으로 곁들인다.
쓴맛이 매력적인 봄나물, 씀바귀의 쓴맛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한 오 년은 더 걸릴 것 같다. 다음 달에는 두릅이랑, 보들보들한 첫물 가죽나물 사러 꼭 다시 오리라.
푸드 블로그 '모모짱의 맛있는 하루'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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